어쩌다 껌

by 글똥

쇼핑몰에서 은단껌 한 박스를 주문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오물오물, 질겅질겅 껌을 씹는다. 내 턱은 사각 턱이 된 지 오래, 걱정과 눈치 따위는 세월에 내주고 마음껏 소리 내어 씹는다. 다소 경박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박함을 능가하는 껌 씹기의 즐거움을 뼛속 깊이 각인해버린 나는 혀의 현란한 놀림과 어금니의 일사불란한 협력이 이루어내는 소리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껌 씹기의 역사는 수십 년 전, 중학교 때부터다. 시골 중학교의 영어 시간, 그때는 수업 시간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심지어, 영어 선생님이 자습 시간에 껌을 씹으며 수업을 지도하기도 했으니. 지금은 이미 퇴직을 하셔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선생님의 성함을 밝히지는 않겠다. 내게는 신통방통한 기술을 전수하여 주신 스승이지만, 아무래도 수업 중에 껌 씹기는 교사의 상에 그려질 만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에피소드를 펼쳐 기록하는 이유는...


내게는 껌 한 통을 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이어서 씹던 껌을 장롱 옆이나 책상 아래에 붙여 두고 다음 날 다시 떼어 내 씹던 때였다. 단물이 다 빠지고 딱딱해진 껌을 얼마나 씹었던지-어릴 적 나는 콩쥐나 심청 정도의 미모는 됨 직하였는데-사각 진 턱선 때문에 미스코리아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계란형의 얼굴을 어떻게 믿느냐고 얘기하는 이에게 세 명이나 되는 언니들의 사진을 들이밀며 그들을 설득한다. 어쩔 수 없이 믿어 주는 척하는 그들에게 나는 껌 씹기의 신기술을 보여 주며 설득에 논리를 더한다. 그들은, 대부분 나의 껌 씹기에서 모든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놀라워한다. 그리고 몇몇은 그 기술을 전수받고 싶어 한다.


대체로 껌 씹기는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릴 때 소리가 난다. 지극히 평범한 껌 씹기다. 조금 더 기술을 보여줄 때가 있다. 맞물릴 때 연달아 두세 번 소리가 나는 것인데 이것도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비장의 무기로 내가 선보이는 기술은 맞물릴 때 한 번, 바로 떼어낼 때 한 번 더 소리가 난다.

취미 생활은 껌 씹기요, 특기는 자유자재로 소리 연달아 내기라고 해도 될 만큼 껌은 내게 탁월한 시간 보내기이며 먹거리이며 소품이다. 동시에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며 친구와 통화도 가능하다. 일석이조의 생활이 가능한 껌 씹기의 취미와 특기를 한동안 잊고 살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는...

최근 근무처 이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용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출퇴근하는 자동차와 집에서 기술을 연마한다. 몇 시간째, 어금니들의 잦은 운동으로 턱이 얼얼할 때도 있다. 한 통씩 사서 씹다가 쇼핑몰에서 한 박스를 주문하는 나를 발견하고 이미 껌 씹기에 중독되었음을 순순히 인정한 바다.


열심히 껌을 씹던 어느 날, 어금니에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뿌리와 잇몸에 무리가 온 것이 분명했다. 거울 앞에서 나를 봤다. 잇몸도 늙어 내려앉기 시작한 게 보였다. 게다가 아랫니 잇몸쪽 이가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었다. 양치는 열심히 했지만, 내 치아를 정성스럽게 들여다본 지는 꽤 되었다는 걸 기억했다.


갑자기 삶이 슬퍼졌다. 껌 씹기를 당장 그만두고, 치과를 예약해야 했다. 과자 하나를 먹고도 양치를 하고, 자기 전에는 무조건 양치를 했다. 잇몸의 썩은 부분은 금세 이를 통째로 흔들어 결국 뽑아야 할지도 모른다. 진작 치아 관리를 할 걸 싶은 울적한 마음에 그때부터 껌 씹기의 취미도, 특기도 심드렁해졌다.


과유불급의 상태는 중독이고, 몸에 무리를 가져온다. 껌 씹기라고 다를까. 미모까지 포기하고 익힌 기술이지만, 오복 중에 하나라는 치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앞으로 먹어야 할 맛 난 것들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말이다.


매일 양치를 하고 나면 치아를 꼼꼼히 살펴본다. 더 상하지 않도록 치실로 마무리하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슬픔과 우울함을 가슴에 가득 담은 채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을 바짝 거울에 붙이고 치아와 잇몸을 점검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사.라.졌.다.


잇몸 아래의 검게 썩은 부분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름 촘촘한 미세모로 잇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양치를 했건만, 칫솔모의 틈새를 피해 잇몸 속에서 버텼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내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직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이지만, 어쨌든 나는 깨끗해진 치아 덕분에 다시 즐거워졌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 책상 한쪽에 밀쳐 두었던 껌에 슬그머니 눈이 간다. 잇몸이 멀쩡해졌으니 다시 껌을 씹어 봄직도 하다. 서둘러 두 겹의 옷을 벗긴다. 오랜만에 만나는 달콤하고 시원한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따닥 따닥 딱 따딱. 나의 전성기는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