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달서구청에서 손미나 아나운서의 강연이 있었다. 약력을 보니 나랑 동갑이었다. 갑장이라는 이유로 괜히 기분이 더 좋아진 나는 강연장의 제일 앞자리 중앙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왔을까 싶은 부러움에 정신없이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해마다 글쓰기를 쉬지 않았고, 여행을 다녀온 책을 냈으며 게다가 그중 한 권은 소설이었다. 책을 내게 된 배경을 들으며 미모자가 활짝 핀 프랑스는 어떤 풍경일까 상상하는 것만도 즐거웠다.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미모자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꽃집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구할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리며 반드시 그녀의 미모자를 나의 식탁에 들여놓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그 꽃을 기필코 사야겠다는 마음이 유독 강했던 그때, 나는 좀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갚아도 줄지 않는 아파트 대출금에 내 꿈은 이미 한 풀 꺾였고, 재수생 아들의 학원비에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어쩌면 미모자는 내게, 동갑인 그녀가 살아 온 인생의 향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여행과 용기 있는 선택을 내 삶의 반경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월의 중순이 다 지나가던 어느날이었다. 함께 강연을 들으러 갔던 지인에게서 사진 한 장과 함께 카톡이 왔다. 그녀의 거실 한복판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지난가을의 그 미모자가 노랗게 피어 있는 사진이었다. 하마터면 시절을 놓칠 뻔하였다. 마음이 동한 나는 퇴근길에 바로 꽃집에 들렀다. 아쉽게도 미모자는 벌써 시즌이 끝나 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미모자를 살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나 짧다니. 지인에게 얼른 전화를 했다.
다행히 그녀가 꽃을 산 매장에는 아직 미모자 몇 송이가 남아 있었고, 나는 그 꽃을 예약해 두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길을 나섰다. 혹시라도 누가 미모자를 사가지는 않을까, 비슷한 추억을 공유한 사람이 또 있어 나보다 먼저 그 집을 찾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닐 포장을 벗기고, 투명한 유리병에 꽃을 꽂는다. 미모자와 어우러진 꽃들로 집안이 환하다. 나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가만히 식탁 의자에 앉아 꽃을 본다. 꽃들이 향기를 조금씩 내뿜기 시작한다. 그 향기가 내게로 와 머무는 시간, 나는 ‘꽃멍 놀이’에 빠진다.
일상의 밥벌이에 지친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굳어가던 나의 뇌가 다시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다. 감성의 촉수를 살리는 일이 만 원의 행복에 있다니. 삶이 심드렁하거나 답답할 때면 꽃집에 들러 꽃을 사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월급날, 나를 위해 꽃다발을 들고 퇴근하는 모습도 제법 낭만적이지 않은가.
1월의 추위를 사뿐히 건너 먼 곳까지 와 준 프로방스의 미모자, 그녀가 추억하는 미모자의 행간에, 잊고 있었던 내 추억의 여행지가 책갈피처럼 꽂힌다. 영원히 버킷리스트로 남겨질까 봐 내심 불안해하던 볼리비아의 소금사막과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다음에는 프랑스에서 글을 썼다는 손미나의 그 꽃을 꼭 보러 가리라 다짐해 본다.
따뜻한 실내 온도 탓인가. 미모자 노란 꽃망울들이 연달아 팝콘처럼 터지며 고향의 소식을 서둘러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