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by 글똥

시끄러운 소리가 집 안을 울린다. 욕실 타일을 뜯어내는 공사 중이다. 10년을 살았더니 여기저기 수리할 곳이 많다. 실내가 조금씩 뿌옇게 흐려지더니 버석거리는 것들이 발에 밟힌다. 당장 욕실의 깨진 타일부터 교체하자고 사람을 불렀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지 않다. 욕실 문을 닫고 작업을 하는데도 미세한 먼지들이 문 틈새로 빠져나왔다. 미처 덮어 두지 못한 화장대 위와 안방에 금세 먼지가 쌓였다. 서둘러 얇은 이불을 꺼내 덮어 보지만 이미 한 겹씩 먼지가 내려앉은 자리를 치울 도리밖에 없다.


청소기를 사용할 수도 없다. 수평이라고 명명하는 곳에 빈틈없이 내려앉은 먼지를 걸레로 닦고 치운다. 화장품을 일일이 닦고 정리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쯤 되니 깨진 타일 몇 개 정도는 사는 데 별 지장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수고로움이 번거로워 또 어리석은 후회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수습할밖에 도리가 없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치우다 보니 그동안 소홀했던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온다. 구석구석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정리와 청소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하고 처음 살던 집은 지금보다 좁았다. 신혼살림을 채워 놓고도 널찍하던 공간은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물건들로 조금씩 채워졌다. 남자아이 둘이 뛰어놀기에 적당한 집을 찾아 옮긴 곳이 지금 사는 곳이다. 묵은 살림을 정리하며 새집에서는 더 살림을 늘리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살다 보니 마음먹은 것과 다르게 자꾸만 욕심이 늘어났다. 그 욕심들이 무리하게 자리를 잡은 흔적이 지금 집에 가득하다. 집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사람이 어느 순간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쓰지도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을 옆으로 꺼내 놓았다. 이참에 깨끗이 정리하고 이사 올 때처럼 넓고 깔끔한 상태로 살아 보자는 마음에 미련 없이 물건들을 꺼냈다. 끊임없이 나오는 옷과 책이 거실에 수북하게 쌓였다. 버려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불어나자 집 밖으로 내놓기가 망설여졌다. 아까운 마음에 다시 눈길이 갔다. 한 번쯤은 쓰이겠지 싶은 물건을 다시 옮겨놓으니 도루묵이다.


욕심으로 일이 잘될 리 없다. 제 나름의 색과 크기로 둘둘 뭉쳐 구석에 쌓인 저 먼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군림한 세월이 단박에 드러난다. 들쑤셔 놓은 집은 원래의 상태보다 더 엉망이 되었다. 이제 집 밖으로 몰아내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최대의 과제로 남았다.


꺼내 놓은 물건을 종류별로 정리하는 일도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하나씩 둘씩 꺼내어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보니 조금씩 빈 곳이 생긴다. 공간 너머에 잊고 있었던 맑은 하늘과 구름, 물들어 가는 산과 거리가 성큼 다가온다. 숨어 있던 것은 구석에 쌓인 물건과 먼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간과 아름다움이었다. 청소하는 곳은 집인데 내 마음과 생각의 방들도 거미줄이 걷히듯 조금씩 맑아진다. 한 치 앞의 지저분한 것을 걷어내자 비로소 보이는 깊은 소요의 시간이라니. 욕심에 눈이 어두웠던 탓이다. 아직 버릴 것이 많은 이곳을 꾸준히 치우고 정리하며 더 많은 삶을 비워둔 자리에 내려놓자고 다짐한다.


여유의 공간 너머, 지니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가벼운 모습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풀들과 나무를 본다. 붉은 잎들이 바닥을 물들이는 것은 새로운 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자연은 가진 것을 내려놓으며 불필요한 것의 소유를 탐하지 않는다. 미련이 없다. 묵은 먼지도 그 과정을 함께 한다. 땅 위의 생물뿐이겠는가.

바다의 일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털어내지 못하는 생각이 많을 때 바다에 가면 그 모든 시름이 파도 끝에 부서진다. 언젠가 내 몸을 던져 내려간 바닷속에서 만난 적요의 풍경은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무수한 물고기들의 질서와 해초들의 유연함, 그 모든 것들이 소유를 벗어난 자유로움에 있었다. 욕심 위에 내려앉는 먼지는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비워내야 할 내 삶의 더께였다.


정리하다 보니 가족 네 명이 함께 하는 공간이 모두 내 욕심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음을 본다. 가장 잘난 사람인 척하느라 시간을 내어 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탓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의 소유물인 듯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길들이려고 애쓴 흔적이 적응하지 못하는 부유물이 되어 떠다닌다. 부부의 방에도, 아이들의 방에도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장 중심에 서 있는 내 삶의 흔적을 하나씩 청소한다.


덩어리가 되어 뒹구는 먼지도 바람에 흩날리는 가벼움에서 비롯되어 여기까지 왔다. 내 삶의 가벼움도 날마다 닦아내지 않으면 뿌연 세상으로 뒤덮이거나 덩어리를 이루어 여기저기 굴러다닐 것이다.


집안의 먼지를 치우며 세월의 먼지를 닦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먼지처럼 내려앉은 내 욕심의 시간들과 공간들을 정리한다. 잠시 한 눈이라도 팔아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먼지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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