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을 위해 하트 이끼는 피어나고

by 글똥

오리 떼의 군무. 잔물결을 만들며 학익진으로 나아가던 수십 마리의 오리가 푸드덕, 하늘로 날았다. 카메라를 켤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입술에 머문 감탄사의 여운이 마음까지 와 닿는다. 물 위의 잔상이 사라지고도 한동안 깨어날 수가 없다. 희귀한 진풍경, 다시 보기 힘든 오리들의 공연은 짧지만 강했다.


마을을 삼킨 자리에 모래톱과 낮은 산이 생겼다. 슬픔으로 가라앉은 호수가 그들의 시퍼런 멍이 되어 버린 곳, 청도 공암리를 걷는다. 두 마을을 이어주었던 다리의 일부가 얕은 물길에 실루엣을 드러내고 제법 오른 산길에서도 선연하게 보인다.


꽤 높은 산이 수몰로 인해 이방인에겐 쉬엄쉬엄 걸으면 좋을 휴식처가 되었다. 걷다 보니 아름아름 소문으로 찾아오는 발걸음보다 실향민이 된 노모나 형제의 손을 잡고 오는 이가 더 많다.


그들은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서도 산길의 정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서 떠난 굽은 허리, 노쇠한 등이 금방 지나쳐 온 소나무를 닮았다. 거목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단단히 서 있다. 나고 자란 이 산길에 수놓은 걸음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쌓였을 터. 살던 곳은 없어져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반가울 수밖에. 뒤따르는 내 걸음이 자꾸 한 땀 한 땀 풀어내는 그들의 이야기에 시나브로 다가간다.


그들에겐 고향이 없다. 오래된 추억을 떠올릴 공간이 사라졌다. 주섬주섬 얘기를 주워듣는데도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내려다보니 푸른 공룡 한 마리, 물 속에 잠겨 사라진 마을을 향해 엎드려 있다. 달 뜨는 밤이면 전설의 푸른 용이 깨어나 동네 사람들을 태우고 집집마다 데려다줄 것 같은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찬찬히 둘러보니 생명의 뿌리가 시작된 마을을 지켜주는 것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든든한 공암 풍벽, 절벽 아래 핀 꽃, 새 솔잎 키워내는 늙은 소나무, 그늘에 가득한 하트 이끼, 물과 바람, 해와 달, 구름 한 점과 새소리까지. 마치 생명의 거대한 덩어리 같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마을, 물 위를 걸으며 도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가슴에 새긴 푸른 멍, 언젠가는 사라질 나의 생명, 두려워하지 말고 또 다른 생명이 이어 줄 더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자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노쇠한 몸을 주저 않던 걸음이 아니던가. 뒤따라 당도한 정상의 岩, 그들의 비워냄과 덜어냄의 미학처럼, 바위를 관통하는 세월의 바람처럼 몸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기를.


사라진 마을을 위해 하트 이끼는 오늘도 피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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