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게 해마다 궁전을 허락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 볏짚을 얼마간 쌓아 두었다. 나는 친구들과 바싹 마른 볏단으로 우리들의 궁전을 지었다. 날이 추웠지만, 그 공사는 쉬는 법이 없었다. 아침이면 초록 대문과 담을 넘어 친구들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된장찌개와 김치, 시래깃국과 무말랭이로 뚝딱 밥 한 공기를 비우고 후다닥, 논으로 달려가면 벌써 공사는 진행 중이다. 한바탕 소꿉놀이에, 숨바꼭질에 반나절이 가고 무너진 궁전은 오후 무렵 다시 수리에 들어간다. 한때 우리들의 궁전이 되었던 볏짚들은 재건축이 힘들 때쯤 소들의 양식이 되었고, 일 년 동안 과일과 곡식을 키워낸 땅의 거름이 되었다.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 볏짚에 숨어있던 벌레란 놈이 밤새 나를 훑고 다닌다. 머릿니가 유행처럼 번져 밤새 머리를 긁다 아침이 되기도 했다. 볕 좋은 날, 엄마 무릎에 누워 있으면 참빗으로 머리를 쓸고 손톱 끝으로 톡톡 까만 벌레를 죽이던 시간도 그렇게 좋았다. 그 무릎이 언제 내 것이 된 적이 있었나 싶지만, 그때만큼은 들일도 제쳐 두고, 늦게 얻은 귀한 남동생도 잠시 밀어내고 차지할 수 있었던 엄마의 무릎이었다.
풀의 궁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꼭 찬바람이 둥지를 틀었다. 매서운 바람이 동장군을 데려오면 아버지는 물꼬를 열어 논바닥 가득 물을 가두었다. 밤새 쉿 쉿 소리를 내며 서로를 끌어당기던 물은 또 얼음바다가 되어 우리를 불렀다. 스케이트를 타고 양손에 쥔 송곳으로 얼음을 지치며 온 힘을 다해 놀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겨울 방학이 후딱 지나갔다.
어떤 집에 살고 싶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어린 시절의 그 궁전이라고. 볏단을 나르는 젊은 엄마, 논두렁을 허물고 물꼬를 여는 힘센 아버지, 스케이트를 끌어주던 옆집 오빠, 날마다 어울려 집을 짓고 허물며 시절을 함께했던 동무들도. 시간을 거슬러 돌아간다면, 햇살 내려앉은 툇마루에서 뒤꿈치 들고 담너머 무논을 바라보는 예닐곱의 나, 초등학생이었을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나이 오십이나 되었지만, 그때 그 시절의 풀의 궁전보다 더 낭만 가득한 집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