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가는 길, 고개를 돌려 바라본 남매池. 가을의 모든 살림을 걷어내고 하늘을 통째로 사 들였는가. 하늘보다 더 푸르게 반짝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나무가 그 나무고 그 연꽃이 그 연꽃이었는데, 남매지가 저렇게 예뻤었나. 함께 사는 아내에게 늘 무심하던 남편이 어느 날 바라본 아내의 변신에 화들짝 놀라듯, 내가 지금 딱 그 모양새다.
집 앞 중산지보다 남매지, 남매지보다 영대 숲 산책. 숲을 발견한 후로 인공미로 꾸며진 호수는 시답잖은 코스로 저만치 밀려나고 틈만 나면 숲으로 달려갔다. 출근 전에 혹은 퇴근 후에, 그리고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새 애인과의 바람난 산책이 너무 좋아 거들떠도 안 봤던 곳인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화의 바람이 분 것은 겨울이 준 선물이었을까.
영하로 떨어진 경산의 날씨와 바람, 오늘도 칭칭 동여 매고 숲으로 가는 길, 한 뼘 민낯으로 맞이하는 겨울은 매섭지만 겨울답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고개 돌려 바라본 남매지, 그녀의 살갗에 머문 내 눈이 시리다. 얇게 얼음 화장을 한 호수댁이 한낮의 햇살을 머금고 쉴 새 없이 반짝이고 있다.
물의 변신은 무죄. 호수에 갇힌 푸른 세상은 한마디로 단정 짓기가 힘들 정도로 푸른 그러데이션이다. 겨울이 가질 수 없는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유채색이라 단정 지었던, 나의 섣부른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청출어람 청어람이 지금 남매지에 흩뿌려져 있다.
자연이라 부르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것이 없구나. 서로를 위해 내어 주고 받아들이며 아름답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구나.
어느 날 숲의 길에서 나는 망연자실, 실망한 적이 있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막 시작되려는 계절의 어느 한 지점이었다. 그동안 숲은 풍성한 생명들이 시시각각 바뀌고 날마다 자라고 있어 늘 새로운 기대로 그곳에 들게 했다. 겨울은 달랐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잎과 열매를 떨궈 내고, 남은 것들의 물기를 거두고, 고운 색들을 바람에 실어 떠나보냈다. 그리하여 나는 쓸쓸하고 황량한 그곳이 싫증나 버렸던 거다. 당분간 오지 말아야겠다 싶었던 그날,
그때 내가 만난 것이 숲에 잠든 숨은지의 겨울새였다. 작고 아담한 연못에는 조금씩 살얼음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릴 적 장난이 떠오른 나는 굵은 돌멩이를 여럿 주워 얼음을 깨웠다. 화들짝 놀란 새들이 맑은 소리로 노래하던 그때부터 나의 숲 산책은 겨울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되었다.
남매지에도 겨울새가 둥지를 틀었을까. 더 넓은 곳에 더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얼음 궁전을 지어 놓았으니 새떼들이 머물러 있을 수도 있겠다. 파랑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며 행복을 노래하려나. 숨은지의 새들에겐 잠시 휴식을, 내일은 남매지에 깃든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푸른 궁전에 풍덩 빠져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