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라고, 엄마가 전화를 했다. 오전 병원 순례를 마치고 차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혹시나 오지 않을까 하여 찬합에 팥죽을 담아놨다고, 여든넷의 엄마가 막내딸을 찾는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동지가 되면 팥죽이 먹고 싶었다.
나이가 드는 거라고 했다. 너도 늙는 거라고 했다. 그런 음식이 팥죽뿐이 아니다. 토란, 머위, 냉이, 호박죽, 감자전, 고구마도 그중 하나다. 늘 먹던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콩나물국과 달걀탕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신혼 시절, 시골에서 박스째 가져오는 시래기와 무, 옥수수와 감자 따위는 먹는 양보다 버리는 게 더 많았다. 나누어 먹으려니 다듬는 게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결국 썩어 문드러져서야 쓰레기통으로 갔다.
농사지어 바리바리 싸주던 엄마도 이제 여든 고개를 넘어 병원 가시는 일이 더 잦다. 설, 추석 다음으로 시골에서는 제법 큰 날이라고 하는 동지, 엄마는 여전히 팥죽을 쑤어 귀신을 내쫓고 집안과 자식들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한다. 넷째 딸이었던 고집 센 나로 인해 한숨도 많이 쉬고 처음 회초리라는 걸 들었던 엄마가 요즘 부쩍 생각나는 건, 내게도 엄마라는 이름과 아내라는 이름이 벌써 25년째, 낙인처럼 깊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엄마, 옛날에 나 키우면서 고집도 세고 말 안 들어서 많이 힘들었재?"
"니가 머 힘들었노. 다 이자뿟다. 그라고 자식이라서 개안타. 니를 얼매나 좋은 꿈 꾸고 낳았는데. 그랑께 니가 그래 잘 산다."
왜 다 잊어버렸을까. 좀 기억하고 너 때문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하면 조금 덜 슬플 것 같은데. 서둘러 전화를 끊고 나니 병원 다닌다는 얘기는 오래오래 하지 말아야겠다 싶다. 엄마의 추억에 슬픔이 스며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