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by 글똥

나, 오베는 죽기로 했다.


59세의 나이에 43년 동안 일한 직장을 권고사직으로 그만두어서가 아니다. 아침마다 동네를 순찰하며 차고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번거로워서도 아니다. 이웃이 버린 담배꽁초를 줍는 일이 싫어서도 아니다. 외부인 차량이 함부로 마을로 들어와 아무 데나 주차하는 것을 단속하는 일이 귀찮아서도 아니다. 자유를 찾아 이란에서 이사 온 시끄러운 두 아이의 엄마 때문도 아니다. 유일한 절친이었던 루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환자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슬퍼서도 아니다.


얼마 전,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나의 아내, 소냐의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어서다. 나는 지중해 빛깔의 파란 밧줄을 사서 천장에 매달았다. 내가 좀 무거웠던지, 밧줄이 불량품이었는지 숨이 끊어지려는 찰나, 밧줄이 툭! 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애마 사브에서 가스를 마시고 자살하려던 순간에도 옆집의 임신부가 발견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기차에 치여 죽고 싶어 기찻길에도 뛰어들었지만 나는 죽지 못했다. 세상을 떠나는 일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녀와 결혼 후 나의 날들은 매우 행복했다. 우리는 스웨덴을 여행 중이었으며, 버스가 절벽으로 추락하면서 아내는 아이를 유산했다. 그리고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우리가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세상은 가장 깊은 슬픔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그러나 암흑 같은 세상을 뚫고 나온 그녀가 학교 선생님이 되어 출근하게 된 날, 나는 그녀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도록 밤을 새워 학교 입구에 경사로를 만들어 주었다. 세상은 온통 분홍빛 꽃비로 물들고 우리는 다시 행복의 계단을 걸어갈 수 있었다. 기차 청소부였던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직접 지은 집을 갖고 싶은 내게 건축기술자가 될 수 있도록 공부의 길을 열어 준 소냐. 그녀는 한마디로 내 인생의 전부였다.


나는 오늘도 마트에서 꽃을 샀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곳이 외롭지 않도록 찾아가지만, 실은 내가 쓸쓸하고 힘들어 견딜 수가 없다.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우리의 집에 나 혼자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내 몸과 영혼은 알고 있다. 몇 번의 자살 시도에 실패했지만,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소냐를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그때였을 것이다. 옆집에 이사 온 꼬마 나사닌이 나를 그려 주었던 날, 도화지에 그려진 핑크빛의 내 모습에서 나는 소냐와의 행복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불쌍한 길고양이를 불쑥 내게 맡기고 간 염치 없는 아줌마 파르바네에게서,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고장 난 자전거를 훔쳐 차고 옆에 두고 간 남학생에게서, 몇 번 봤을 뿐인데 무뚝뚝한 나에게 방긋 웃어주는 옆집의 아이 나사닌과 세피데에게서 소냐와의 일상이 다시 내 삶으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귀찮게 하는 그들을 향해 나는 날마다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그들은 자꾸 내 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웃의 임신부 파르바네는 정말 끈질긴 새댁이었다. 그러더니 젊은 날의 소냐처럼 나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소냐의 제자였던 남학생의 자전거를 고쳐 주고, 옆집 새댁의 식기 세척기를 설치해 주었다. 루네가 요양 병원으로 가지 않고 아내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행정 기관에 끊임없이 투서를 넣었다. 그들은 어쩌면 내 삶을 다시 살리기 위해 소냐가 보낸 천국의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죽고 싶었던 나는 이웃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남은 날을 열심히 살았다. 내 장례식장에 모인 이웃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인도의 명상가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이 떠오른다. “새는 죽음이 찾아오면 죽음을 맞지만, 벌레를 잡고, 둥지를 틀고, 노래를 부르고, 날아다니는 기쁨 그 자체를 누리기 위해 날아다니느라고 삶에 너무나 열중해서 죽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이제 사랑하는 나의 아내, 소냐 곁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