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나는 나를 위로할 이유가 있다

by 글똥

열여덟, 《슬픔이여 안녕》을 쓰고 통장을 개설할 수 없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상금 십만 프랑을 현금으로 받고 재규어 자동차를 산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는다. 그리고 이브 몽땅, 잉그리드 버그만, 안소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 <이수>를 감상한다.


#1 프랑수아즈 사강

우리의 열여덟은 대입 준비로 ‘삼당사락’의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열여덟은 그랬다. 2021년을 사는 그들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몇몇은 시를 끄적이거나 소설을 쓴다고 흉내를 냈다. 나와 동시대에 김천에서 학교에 다니며 성공한 김연수, 문태준의 소설과 시를 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들의 성공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 사강의 지독한 자기애를 보며 글로 성공한다는 것은 타자가 아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힘이 아닐까 싶다.


#2 폴, 로제 그리고 시몽

실내 장식을 하는 폴과 트럭 관련 사업가인 로제는 오래된 연인 사이다. 젊은 변호사인 시몽은 집의 인테리어를 도와주러 온 폴과 인사를 나누고 브람스의 교향곡을 함께 들으러 간다. 세 명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보며 중년의 여자 주인공 폴의 무기력과 방황이 이해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볼 시몽의 목소리를 만난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그런데도 폴은 젊은 시몽의 구애를 거절한다. 폴을 향한 시몽의 사랑 때문에 잠시 질투를 느끼기도 하지만, 바람둥이인 연인 로제는 마지막까지 폴에게 실망을 안긴다. 퇴근 후 데이트를 기다리는 폴에게 다시 약속 펑크를 내는 로제를 보며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한다. 로제의 약속 취소 전화를 받고 폴은 어떤 삶을 선택하였을까. 사강은 마치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갈 건가요?’라고 폴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가끔 길을 잃고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게 묻는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함께 할 수 없다는 전화기 너머 로제의 줄임표가 모스부호처럼 내게 건너온다. 남.은. 날.을. 더.욱. 기.쁘.게. 살.아.가.는. 법.을. 발.견.해.야. 한.다.


#3 다시,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시각과 청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도 좋지만, 촘촘한 문장을 따라가면서 상상하는 나만의 공간은 특별하다. 나의 세계관과 맞물려 있는 사건이 군데군데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해석과 감동과 위로에 쉽게 가닿을 수 있다. 게다가 그녀가 활자로 남긴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는 마치 경험한 사람처럼 매우 섬세하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녀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살고 싶어서, 숨을 쉬고 싶어서, 답답한 현실의 벽에 숨구멍 같은 글을 또박또박 적으며 그녀는 그 시절을 살아내지 않았을까. 글이 위로되는 삶, 시공간을 훌쩍 넘어 요즘 나에게 오는 문장들이 수액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사강이 내게 준 선물일 것이다.


#4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녹록지 않은 삶의 썰물과 밀물이 우리에게 드나들지만, 대체로 우리는 애써 무시하거나 침묵의 언어로 그 시간을 바라본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세상을 향해 펄떡이는 힘줄과 근육이 느슨해지는 경계가 어디쯤인지 우리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사강의 나를 파괴할 권리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제 우리는 ‘나를 위로할 이유’를 찾아보아도 좋지 않을까. 누군가 당신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함께 들으며 마음에 묻어 둔 고민을 슬며시 꺼내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