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내 마음에도 홀로코스트가 있다

by 글똥

성큼, 유월이다. 시절 따라 내리는 비가 대지를 적시고 만물을 기르니 시우지화(時雨之化)! 그러나 곧 여름이요, 장마 시작이다. 비바람과 태풍을 몰고 오는 자연 앞에서 나약한 인간은 조심하고 또 조심할 뿐. 창문을 흔드는 천둥소리와 번쩍하는 번개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죄짓고는 못 살지’라는 말을 한 번쯤 해 보거나 들어봤을 나이.


하여, 거센 빗줄기 아래 통곡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만나러 간다. 겨우 여덟 살, 브루노의 가족은 승진한 독일 장교 아버지를 따라 폴란드의 홀로코스트로 이사를 한다. 학교도, 친구도 없는 그곳에서 소년은 뒷마당으로 난 길을 따라 탐험을 시작한다. 신록이 우거진 숲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에서 독일 소년은 철조망 너머의 줄무늬 파자마 소년, 슈무엘을 만난다.


아아, 동심(童心)은 언제나 옳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친구가 된다. 철조망을 사이에 놓고 두는 체스며 공놀이 시간이 마치 딴 세상처럼 평화롭다. 그러나 어른들은 한순간에 동심을 짓밟아 버린다. 늘 먹던 맛있는 과자를 친구와 나누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여덟 살 브루노는 무서웠다. 혼날까 봐, 두려움으로 한 거짓말 때문에 친구였던 슈무엘은 도둑으로 몰리고 멍이 들 때까지 두들겨 맞는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필, 그날이었다. 슈무엘의 사라진 아빠를 찾기 위해 브루노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철조망 너머로 건너간 날. 언젠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이유도 없이 맞아야 했던 친구에게 미안해서 아빠를 꼭 찾아주려고 약속한 날. 그래서 둘이 함께 손잡고 가스실로 끌려 들어간 날.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을 따라 폴란드까지 온 브루노의 엄마가 굴뚝의 연기가 유대인 학살 현장인 것을 알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곳이 비로 젖었다. 유대인의 막사와 가스실도,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철조망 너머의 세상에도.


홀로코스트, 시대를 뛰어넘어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분명 누군가에게 나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유대인이었다가, 또 누군가에게는 제복을 입은 독일인이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철조망 이쪽저쪽을 넘나들지 않았노라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내 심연 어딘가에 분명 잠들어 있을 어린 브루노와 슈무엘의 음성을 찾고 싶은 절실함으로 영화의 한 장면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유월, 신록이 절정에 이르고 꽃들은 천지에 무지갯빛으로 무성하다. 누가 뭐래도 변함없는 자연 앞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자연은 드나드는 무엇에라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 우리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었든, 제복을 입었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고 보니 동심은 어째 자연과 닮은 구석이 많다.


동심, 문명에 젖어 파괴된 지 오래다. 나는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희(喜)보다는 노(怒)가, 락(樂)보다는 애(哀)가 더 많아 괴로운 인생, 자연을 벗 삼아 가까이하는 것이 그 첫 번째 답이요,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처럼 ‘두 발로 걸을 때 사색할 수 있다’는 말을 믿어 실행해 보는 것이 두 번째 답이 아닐까 싶다. 장마가 짙어지기 전에 타박타박 성암산에 올라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