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모드

by 글똥

내 사랑 모드

책 :그림 모드 루이스/글 랜스 울러버/사진 밥 브룩스/번역 박상현/남해의 봄날

영화 :<My Love>, 2016 / 에이슬링 월쉬 감독/에단 호크, 샐리 호킨스 주연


책과 영화, 둘 중 나는 책을 먼저 읽는 편이다. 문장 속에 숨은 천 개의 풍경과 자유를 향한 상상을 마음껏 그리고 내 식대로 오롯이 즐기고 싶어서다. 어쩌다 보니 《내 사랑 모드》는 영화를 먼저 보게 됐다. 문신처럼 기억에 저장됐던 그녀가 수년이 흘러 요즘 내 삶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기억의 썰물은 과거의 물살을 거슬러 현재에 이른다. 덕분에 볕 좋은 휴일 《내 사랑 모드》를 읽는다.


몇 장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영화 속에서 만난 그녀가 책갈피에서 걸어 나와 내게 말을 건다. 그녀는 아주 친근한 목소리로 내게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었다. 시대와 국적을 넘어 작은 오두막집으로 나를 초대한 그녀의 굽은 등 위로 작은 햇살이 머문다. 나는 조용히 그 곁에서 그녀의 그림을 감상한다.


많은 사람이 그녀의 그림을 좋아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찾아왔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녀가 내게 보여주는 그림 한 점 한 점 속에 나는 오래 머물렀다. 째깍째깍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이 모드와 나의 교감을 이해한 듯 포근한 햇살로 우리를 감싸며 느긋이 기다려 주었다.

어쩌면 나는 잃어버린 시절이 아니라 마음껏 울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온 건지도 몰랐다. 내 마음을 아는지, 그녀는 온몸으로 슬픔을 껴안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 장씩 완성된 그녀의 그림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울었다. 소리 없이 훌쩍이는 나를 곁눈질로 보던 그녀가, 큰소리로 엉엉 우는 내 모습을 보고는 잠시 책을 덮고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칠정과 오욕은 살아있는 것들을 결코 비껴가지 않는다. 저마다 경험치 만큼 비로소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아픔과 슬픔의 강을 건너 본 사람은 안다. 녹록지 않은 삶을 견뎌내기 위해 침묵하고 잠잠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하는지. 모드의 그림에는 모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녀,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이모와 함께 살다 집안일을 해 줄 여자를 구하는 생선장수 에버릿과 함께 살게 된 작은 오두막집, 희뿌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의 빛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붓끝으로 그려내는 화가. 마침내 부부라는 이름으로 어설프지만 완벽한 사랑을 하게 되는 한 남자의 아내 모드.


모드는 실존 인물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자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그림 그리기가 힘들었다는 말에 나는 오월의 갈퀴나물 꽃을 떠올렸다. 염증 치료에 좋다는 갈퀴나물 꽃차를, 노란색 데이지 꽃이 그려진 스토브에, 중산지에 지천으로 피어 빛나는 보라꽃을 덖어 꽃과 나비가 그려진 그녀의 주전자에 넣어 마시게 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1970년 7월 30일,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오히려 암울했다. 그런데도 그림 속 세상은 밝고 화사하다. 그래서인가. 액자 속에 자신의 모든 삶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그녀. 모드의 영혼이 깃든 맑고 깨끗한 색채를 보고 있노라면 도시 생활에 백태 낀 우리의 마음이 시나브로 위로받는 느낌이다.


그녀의 장례예배를 인도한 목사의 시편 23편과 51편, 90편의 구절도 그녀의 그림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선물이 되었다.

마지막 장을 덮는다. 너나없이 우리의 삶은 마치 퍼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완성하고, 가족을 완성하고, 친구와 이웃, 동물과 식물, 하늘과 바람, 모든 것이 조화로운 삶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한 조각의 퍼즐이 되어 날마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잘 어우러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생의 걸음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당신다운 모습으로 걸어가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던, 모드와의 따뜻했던 시간을 마음에 고이 품고 이제 그녀의 작은 오두막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