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by 글똥


책:샬럿 브론테, 민음사

영화:1996년작/프란코 제피렐리 감독, 윌리엄 허트, 샤를로뜨 갱스부르 주연

1948년작/로버트 스티븐슨 감독, 오손 웰즈, 조안 폰테인 주연



“불이야”

로체스터의 성이 불길에 휩싸였다. 성에 갇힌 로체스터의 아내가 불을 질렀다. 아내를 구하려다 불구가 되어 버린 남자, 로체스터. 그는 아버지와 형의 계략에 속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15년을 방황했다. 가정교사로 온 제인과 마음을 나누게 된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내가 있다는 것을 제인에게 들켜 버리고 결혼식이 무효가 된 날, 제인은 떠났다. 그날, 아내는 불 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


어린 제인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외숙모의 손에서 자랐다. 욕심 많은 외숙모는 제인을 기숙학교로 보내버린다. 그러나 어디든 통(通)하는 사람은 있다. 그 힘으로 우리는 험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헬렌과 절친이 된 제인은 기숙학교에 조금씩 적응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제인,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제인, 그녀는 자기 정체성이 확실하다. ‘나는 누구인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기침이 심해진 헬렌이 격리된 날, 제인은 기숙사의 엉터리 규칙을 무시하고 맨발로 헬렌을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침대에 누워 나누는 대화를 나는, 엿듣는다.


“Don't leave me." (나를 떠나지 마) “You must believe. In heaven, forever." (넌 꼭 믿어야 해, 천국에서 만나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


절친이었던 헬렌을 떠나보냈으나 세월은 변함이 없다. 제인은 어른이 되어 가정교사로 로체스터의 성에 도착한다. 그가 돌보는 여자아이, 아델의 가정교사가 되어 하루를 보낸다. 산책로에 펼쳐진 넓은 초원과 호수의 풍광이 그녀의 평화로운 일상을 말해 준다. 아델의 주문으로 로체스터의 초상화를 그려 주며 ‘빛만큼 그림자도 중요하다’고 말해 준다. 로체스터가 그 말을 믿느냐고 하자, 제인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삶의 철학을 담은 메시지다. 아마도 이 소설의 작가인 샬럿 브론테의 인생관이 담긴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브론테가 살았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는 문학이 절정을 이룬 때다. 브론테의 세 자매 모두 소설가로 유명하다. 샬럿은 그중 첫째다. 둘째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셋째 앤 브론테는 《아그네스 그레이》를 집필했다. 그녀들이 태어난 곳은 하워드라는 작은 마을이다. 몇 해 전, TV에서 몇몇 연예인이 나와 브론테 자매의 창작 근원이 된 마을을 여행하며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브론테 오솔길’도 있었고, 일 년 내내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황야도 있었다. 그녀들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그녀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시골 마을의 울창한 숲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작품에는 작가의 생활과 생각이 조금씩 묻어난다고 보는바, 아마도 제인 에어를 읽으며 상상하는 풍경의 8할은 브론테가 살았던 19세기의 영국과 닮지 않았을까 싶다.


기숙학교로 쫓겨났던 제인에게 도착한 한 통의 편지, 거기에는 생사를 몰랐던 삼촌의 소식이 있었다. 제인은 삼촌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고 부자가 된다. 그리고 손필드 지역으로 돌아와 로체스터의 아내가 된다. 그를 돌보며 그와 함께 남은 생을 아름답게 보낸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그녀를 보며 나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본다.


십여 년 전, 우리 가족에게 닥친 화재의 시간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은 곤궁에 처하면 비로소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그랬다. 불성실했던 삶과 무기력에 빠져 일상이 지루하고 의미가 없었다.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나갈 수가 없었던 그때, 화재는 엄마, 아내로서의 자리를 가장 먼저 확인 시켜 주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이름이 있다. 주어진 역할에 따라 중요한 것과 잠시 미뤄두어도 좋은 것이 있다. 정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삶, 거기에 자기 정체성이 있다. 내 삶의 주권자인 하나님을 늘 앞자리에 두면 누구보다 빨리, 지혜롭게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다. 헬렌이 제인에게 남기고 떠난 말은 지금의 우리를 향한 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