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by 글똥

김주영 소설, TV문학관 드라마

정다빈(삼례), 김해숙(어머니), 임동진(아버지)


홍어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수년 전, 수필 모임에서 소설 <홍어>를 읽었다. 여름마다 하던 강사 초청 대신 김주영 작가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훨씬 전이었다. 우리는 남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의 홍어 전문 식당을 예약하고 홍어를 먹으며 <홍어>를 이야기했다.


코끝을 쥐게 만드는 역한 냄새가 내 입에 딱 맞았다. 맛있어서 날름날름 먹다 보니 김주영의 홍어는 저만치 건너가고 톡 쏘는 맛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 그리운 것은 홍어가 아니라 홍어로부터 비롯한 시간과 음식과 사람들,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모든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2021년, 나는 오래 사용하던 32기가의 핸드폰을 버리고 256기가의 노트폰을 구입했다. 나는 선명한 색상과 스테레오 음향까지 지원되는 신문물에 연신 감탄사를 내지르는 50세의 아줌마가 됐다. 지루하던 여름의 끝자락, 무료 유튜브 삼매경에 빠진 나는 <홍어>라는 제목의 TV문학관을 발견하였고, 익숙한 김주영, 익숙한 홍어, 익숙한 배우들이 좋아 설거지와 청소를 접고 추억에 잠긴다.


雪海,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에메랄드 바다를 보며 ‘아!’라는 감탄사는 이럴 때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엄마의 젖가슴 같은 곡선과 설탕 가루를 천지에 뿌린 듯한 <홍어>의 설원을 보고 있으면 해 아래 반짝이는 한국의 설해는 외국 바다의 윤슬에 비할 바가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고전미까지 더해져 편안하면서도 훨씬 더 강렬하다.


꽤 오래전, 이 드라마는 상영됐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TV문학관을 보려고 오는 잠을 깨우며 기다렸던 기억이 선하다. 아마도 이 드라마는 내가 보지 못했거나 보았더라도 감흥 없이 보았었나 보다. 책의 기억으로 더듬어 본 드라마는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생각보다 점수가 후하다. 하여 만족도도 높다.


아마도 독서 모임을 한 그해 가을, 김주영 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송의 객주 문학관에 들러 그의 생애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소설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그어보는 시간을 가져 본 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살면서 누구는 생애사를 쓰고, 누구는 시를, 누구는 소설을 쓴다. 삶의 편린이 어디에든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책을 접할 때마다 느낀다. 공감의 영역이 깊고 넓을수록 내 삶의 이해와 위로가 많아지면서 고통스럽더라도 죽음보다 삶의 이유를 가까이 두게 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매서운 삶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아마도 당신이 여자라면, 아내라면, 어머니라면 알 것이다. 어리지만, 아니 어리기에 거침없는 삼례의 모습을 본 후 마침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어머니에게 더욱 큰 응원을 보내야하이유를.


홍어에게 있는 갈색과 검은 반점, 세영의 아버지가 앓고 있는 ‘어롯’이라는 곰팡이 반점, 동일한 병을 앓는 삼례는 몽유병까지. 호영이라는 갓난아기를 두고 떠난 아버지의 바람난 여인, 모든 상황을 끌어안고 잘 삭은 홍어처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살았던 세영의 어머니. 그러나 돌아온 남편과 아들 세영과 호영을 뒤로하고 마침내 자신의 길을 선택한 어머니. 삭을 대로 삭은 홍어의 삶을 내던져버리고 새로 난 길을 나선 그녀를 거듭 응원한다.


언덕 위의 붉은 석양과 천지를 덮은 눈, 그사이 한 점으로 ‘어무이’를 부르며 우는 세영의 목소리가 사뭇 서글프지만 그건 어머니를 사랑했던 아들의 몫으로 남겨 두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