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이다. 올해는 클래식 프로젝트다. 나름 애를 써 자료를 찾았다. 시간을 꼼꼼히 나누어 계획표도 짰다. 1월은 방학이라 아이들이 모두 오전에 온다. 학습 후 점심을 먹고 16명의 아이들이 코로나 가림판 앞에 모여 앉았다.
쉽게 기억하라고 노랫말을 만들었다. '베토벤 브람스는 독일~'로 시작하는 노래를 다 함께 불렀다. 틈틈이 만든 노래가 무려 5절까지있다. 빛나는 곡들을 만든 음악인이 이렇게나 많으니 앞으로 몇 년 넉넉히 수업을 해도 되겠다. 목청이 좋아 수업에 힘이 되는 규ㅈ이가 태권도를 갔다. 아쉽지만 혜ㅅ이를 선두로 함께 5절까지 불렀다. 발음이 긴 작곡가는 아무래도 어렵다. 라흐마니노프, 하차투리안, 차이콥스키는 스타카토를 넣어 부르게 했다.
베토벤과 루돌프의 우정, 나폴레옹의 침범. 설명이 길어지니 1학년 지ㅎ가 산만해지기 시작한다. 6학년 남자 셋은 괜히 장난을 건다. 준비한 설명을 접고 음악을 틀었다. 집에서 즐겨 사용하는 레드 블루투스를 켜니 음질이 좋다. 챙겨 오길 잘했다.
이별과 부재, 만남으로 이루어진 곡을 다 들으려면 37분이나 소요된다.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세가 꿈틀꿈틀, 2학년 지ㅇ이는 벌써 지렁이처럼 기어 다닌다. 첫 곡만 듣고 미처 다 못한 현악기와 타악기 설명을 했다. 한자 수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打와 絃을 쉽게 이해한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 베이스, 아쟁, 가야금, 거문고. 서양과 동양의 악기가 아이들 입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세계 지도를 펼치고 아이들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를 찾아 보았다. 혜ㅅ이가 세 나라를 짚더니 삼각 김밥이라고 한다. 드ㄹ가 유럽은 우리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한다. 가끔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그대로 詩가 될 때가 있다. 가을의 열매처럼 한꺼번에 후드득 떨어질 때면 미처 내 마음에 주워담지 못한 문장이 매우 안타깝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이 개입하지 않으면 스스로 빛나고 오래 아름답기까지 하다.무엇보다 곁에서 잘 지켜봐 주고 잘 기다려 주는 어른이 될 일이다.
마지막 만남의 곡을 듣고 준비한 노트에 마인드맵을 해보았다. 느낌과 감상, 기억나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성ㅎ이가 '저렇게 멋진 곡을 빨리 연주하려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적었다. 수ㅈ는 베토벤의 제자 이름이 뭐냐고 다시 물었다. 또래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이름, 체르니라고 알려 주었다. 베토벤의 친구 루돌프 이야기에서 갑자기 캐럴송이 나와서 한바탕 웃고 다 함께 노래도 불렀다.
ㅡ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딱지)~
아이들은 이렇게 캐럴을 불렀다.ㅡ
4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클래식을 듣고 감상 나누기를 하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늘 그렇다. 계획과 실행은 늘 오차가 있다. 아예 판을 뒤집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즐겁고 신나야 한다는 것이다.엇길로 가더라도 한바탕 웃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지나가 버렸다. 경ㅈ, 혜ㄹ, 유ㄹ, 효ㅈ, 드ㄹ는 클래식이 편안한지 눈을 감고 벽에 기대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친구 아들 중에 학업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명곡을 치면서 해소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 이 아이들 중 누구에게든 이런 영향이 미치길 바란다. 음악이 주는 힘으로 안정을 누리길, 평안을 되찾길. 아침마다 직접 내린 커피와 함께 호사를 누리는 요즘의 나처럼 말이다.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는 클래식의 맛을 나누기엔칼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 제격이다. 코코아 한 잔과 클래식, 어린이들을 위한 메뉴도 벌써 정했다. 게다가 다음 수업은 비발디의 사계다. 마시멜로가 들어간 코코아를마시며 만날 사계의 겨울이, 아이들의 모습이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