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들어갑니다."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화르륵, 불붙는 것처럼 뜨끈뜨끈한 공기가 내 몸에 있는 모든 출구를 통해 뿜어 나온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입을 크게 벌린다. 마스크 안이 뜨겁다. 나, 이러다 용가리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싶다가 불꽃으로 사라져 간 연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한 장면이 쓱 스쳐갔다.
잠시 후 알람이 울리고 낭랑한 목소리의 아가씨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숨을 들이켜고 숨을 참으세요. 숨을 내쉬세요."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나는 지금 수술 후 6개월의 시간을 잘 보냈는지 시험을 치는 중이다. 어찌 됐든 백 점을 받아야 하기에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어제저녁 이후로 금식하고 물만 몇 모금 마신 뒤 검사에 들어갔다. 수납과 주사,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고 또 시티 촬영, 뼈스캔, 초음파... 줄줄이 사탕처럼 시험이 계속이다. 둥그런 통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때마다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몸은 바짝 긴장 상태다.
검진을 받다가 조영제 부작용으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내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불안을 모두 떨쳐낼 수 없다. 절대 아닐 거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한 치 앞, 사람 일을 어찌 아는가. 그냥 좀 젊으니까, 여태 그런 적 없었으니 안심하라는 주위의 위안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통 속을 들락날락하면서, 겁이 나서 눈도 못 뜨고 꼭 감은 채 침을 꼴깍 삼키면서, 그래도 감사한 일을 생각했다. 병원에 올 수 있으니 감사. 검사할 수 있으니 감사, 가족이 옆에서 함께하니 감사, 기도해 주는 식구들이 있으니 감사.
시간이 흐르고 나를 불사를 것 같던 열기도 차츰 잦아든다. 아직 죽지는 않겠구나. 세상에 빚진 것이 많아서.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알람음도, 기계음의 아가씨도 이제 조용하다.
주삿바늘을 뽑고 마지막 시험을 치를 방을 찾아 걸음을 옮긴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 밝고 명랑하게. 100점 만점 고지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