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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받침

by 글똥



초등학교 1학년이 수 쓰기를 하고 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수를 읽고 쓰는 과정이다. ‘팔’과 ‘여덟’을 쓰다가 ‘덟’에서 쓰기가 멈췄다. ‘덜’까지 쓰고 나니 나머지 받침 하나가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것저것을 적었다 지우기를 하더니 결국 포기하고 묻는다.


평소에 글씨뿐 아니라 말하는 것도 제법 야무진 여자아이다. 또래 남자아이를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들었다 놨다 한다. 나는 20년을 함께 살아도 남편 다루기가 힘이 드는데 오히려 이 아이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뿐인가. 머리 굵었다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두 아들도 이미 내 영역 밖의 일이 된 지 오래다. 엄마 없으면 세상이 끝장나는 것처럼 치맛자락 붙들고 놓을 줄 몰랐던 시절도 까마득하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삶의 받침으로 내가 갖고 있었던 어떤 이름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받침이라니, 그 어감이 괜히 억울하다. 같은 자음인데도 모음의 아래에 있다는 이유로 주인공보다는 희생의 자리 느낌이 강하다. 자신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빛나게 해 주는 자리, 모음 위, 혹은 모음 옆의 자음을 비로소 완성해 주는 자리가 받침 아닌가.


내게 생의 받침은 미혼과 결혼을 경계로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겠다. 미혼일 때야 받침 같은 것이 없어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세상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었고, 하기 싫은 것은 두말 않고 거절할 수 있었으니. 그러나 결혼과 함께 주어진 이름들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누구를 위한 것이 훨씬 많았다.


얼마 전, 명절이었다. 시댁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여자만의 방’이면서 ‘철저한 받침’으로 존재하는 부엌으로 자기장에 끌리듯 들어갔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이십 년 동안 해 온 일이기에 당연히 앞치마를 두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쳤다. 친정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어머니, 또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며느리라는 이름에는 보이지 않는 생의 받침이 낙인처럼 찍혀 있는 것이다.


지인이 책 한 권을 건넸다. 가정폭력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여자들의 이야기가 너무 솔직해서 소름이 돋았다. 아내라는 이름의 그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의 받침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이혼녀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마주한 그녀들의 당당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버려야 할 받침과 지켜야 할 받침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선택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천양희의 시 <바다 보아라>가 있다. ‘받아 보아라’가 ‘바다 보아라’가 된 엄마의 시에는 ‘자식들에게 바치느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의 편지가 등장한다. 천양희의 생의 받침은 가정폭력에서 벗어난 그녀들의 것과 다르게 짐짓 따뜻하게 와 닿는다. 가슴 속 어딘가에서 울컥 치미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깊이 이 시를 들여다보면 어머니의 슬픈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의 희생을 달콤한 소스로 만들어 내 인생에 끼얹어 성공하기도, 더욱 빛나게도 했다는 것을 잊었다. 한때 그런 딸이었던 나의 이야기여서 더 오래 남는 시다.


결혼하고부터 내 생이 받침으로 존재하는 것이 억울했다. 그런데 결혼 전의 생활을 돌아보니 내게도 생의 받침으로 존재한 어머니가 있었고, 나의 생에 멋진 소스를 뿌려 준 언니들도 셋이나 있었다. 아직도 그녀들은 나의 우울한 날과 슬픈 일상의 아래에서 기꺼이 쌍받침으로 나를 들어 올린다.


온전한 자음과 모음으로 사는 것도 좋지만, 필요한 곳에서는 기꺼이 받침의 자리에 갈 수도 있는 것이 아름답다 하겠다. 기우뚱하는 ‘여덜’을 완성하는 받침을 묻는 1학년 아이에게 ‘ㅂ’이라고 알려 준다. 아이의 손끝에서 반듯한 ‘여덟’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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