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른다. 유쾌하고 즐겁다. 순간, 흥겨운 놀이터인 줄 착각했다. 그러나 여긴 전쟁터.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긴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얼굴엔 흑칠을 하고 교대하는 친구의 군모를 빌려 싸움터로 나간다. 다시 보니 그것도 맞다. 누군가에겐 놀이터였고 게임이었다. 정치인들의 게임판이 되어 버린 베트남에서는 오늘도 살아남은 아이템들이 죽으러 간다. 평화의 사도가 되어 베트남을 돕겠다는 것은 얄팍한 속임수다. 청년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평화엔 관심도 없다.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여론 조작에만 정신이 팔린 그들은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맥나마라 보고서>가 조금씩 세상에 유출되면서 백악관은 분주하다. 도대체, 누가! 왜? 화면을 응시하는 자는 자꾸 정의감에 불탄다. 댄과 밴의 양심 고발과 용감한 행동을 지지한다. 전쟁 중인 나라는 양심을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지 이 영화는 보여준다. <더 포스트> 신문사의 사주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그 중심에 있다. 그녀는 신문사 대표의 딸이었고,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남편이 죽자 엉겁결에 대표가 되어 신문사를 이끌어간다. 그때가 마흔다섯이었다.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났을까. 비록 입장과 처지는 다르지만, 마흔다섯을 그저 그렇게 건너온 내가 보기에 그녀의 현실은 대체로 무섭고 나날이 외로웠을 것 같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사주가 된 그녀,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에 얹은 것 마냥 살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녀는 꼰대들의 세상에서 버티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 준다.
<펜타곤 문서>를 들이미는 꼰대들과 프란츠 앞에서 그녀는 문득 용감해진다.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던 동생도 그들이 깔아놓은 게임판의 아이템이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을 속인 완벽한 그들의 거짓말을 그녀는 드디어 폭로하기로 한다. 하여 묵인을 원하는 프란츠의 의견을 무시하고 캐서린은 기사를 낸다. 그녀의 위대한 폭로 앞에 진실을 마주한 수많은 누나와 여동생, 어머니와 이모의 이름을 가진 가족들이 캐서린의 뒤에서 그녀를 지지한다. 그녀의 판단과 결단에 기립 박수가 필요한 이유다. 신문사의 존폐 앞에 우왕좌왕, 폭로를 앞두고 그녀는 고민했다. 그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은 그녀의 딸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멋있고 용감한 사람인지, 자랑스러운 나의 엄마를 향한 딸의 전적 신뢰는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정의 앞에 서게 한다. 신문사가 망할지라도 세상은 가려진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지막 방점을 찍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밤, 모녀가 나누는 침실에서의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 재생하며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들에 대한 나의 예의라고 해 두자. 연약하였으나 용기를 장착한 캐서린이 자신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유명 인사들에게 한 말은 또 얼마나 멋진가. "여자가 설교하는 것은 뒷다리로 걷는 개와 같다. 서툴기 짝이 없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녀의 말처럼 정말 세상이 놀라기 시작했고, 백악관은 발칵 뒤집어졌으니 진실을 향한 용기는 반드시 하늘이 돕는다는 당연한 교훈에 보는 이의 마음을 또 한번 시원케 한다.
"고리타분한 꼰대는 항상 내 주위에 있다. 그들을 모두 신경 쓰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꼰대를 만나는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 그들에게 우리는 또 어떤 꼰대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세상의 이웃들은 선량한 양심과 고백 앞에서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손을 내민다. 캐서린의 승리처럼 말이다. 나는 이것을 우주의 법칙이라고 믿고 싶다. 얄팍한 속임수 따위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간만에 멋진 영화를 만났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기에 집중해서 봤더니 목이 마르다. 뒤죽박죽 기밀문서를 펼쳐 놓고 밤새 진실 게임을 하며 서류를 정리하던 밴의 집을 찾아가 보면 어떨까. 치열한 어른들의 현장에서 레모네이드를 팔던 밴의 깜찍한 딸, 마리나에게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 잔 부탁해야겠다. 그나저나 그녀가 아직도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