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모비딕」/저자:허먼 멜빌/옮긴이:김석희/출판사:작가정신
영화:<백경>1956년/감독:존 휴스턴/출연: 그레고리 펙, 리처드 베이스 하트, 레오 겐 외
방학이다. 엄마들이 싫어하는, 그래서 우후죽순 이른 아침부터 머리에 까치집 지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보내는, 그들과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내 입에선 단내가 나는 방학이, 나는 아이들의 엄마들보다 더 싫다. 하여 내 밥벌이의 힘겨움은 8할이 방학에서 비롯된다. 올해도 역시나다. 넘쳐나던 봉사자들도 발길이 뚝 끊기고 활발하던 프로그램도 모두 끝났다. 오늘은 오전부터 북적대는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영화를 봤다.
<괴물의 아이>. 조금 과격한 칼부림이 있으나 한번 더 보고 싶었던 영화다. 남자아이들은 연신 쉿 쉿 소리를 내며 몸이 좌우로 휘었다가 일어나는 등 감동의 도가니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여자 아이들은 잘생긴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만남에 두 눈이 어둠 속 고양이처럼 반짝인다. 중년의 나는 주인공들이 도서관에서 펼친 책 《백경》, 그 하나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졌다. 소녀로부터 글을 깨친 소년이 읽게 되는 책, 최후의 전투에 그림자처럼 나타난 고래가 도시를 헤엄치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오십 대 아줌마는 다시 넋을 잃고 빠져든다. 그리고 진짜 백경을 읽어야겠다고,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영화로운 글쓰기' 모임 덕분이다. 《주홍글자》에 감동한 이 책의 저자 허먼 멜빌이 너새니얼 호손에게 이 소설을 헌정했다는 사실도 새롭고 놀라웠다. 매사추세츠주에 특별한 기운이 있는 걸까. 그 외에도 애머슨, 호돈을 배출한 미국 동부의 그곳이 더욱 궁금하다. 작곡가들이 스승에게 헌정하고, 소설가들도 동류의 작가에게 헌정한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헌정할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간절함마저 갖게 한다.
EBS에 <세계 테마 기행>이라는 프로가 있다. 어느 날, 푸른 바다에서 하늘로 치솟았다가 다시 바다로 떨어지는 향유고래를 보았다. 정확히는 넙적한 꼬리였다. 고래는 그 큰 덩치를 공중에 띄우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다시 푸른 물속으로 사라졌다. 오리발을 떠올리는 하트 모양의 꼬리가 수직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몸이 출렁거렸다. 포유동물인 고래처럼 솟았다가 몸을 접고 앞으로 나아가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는 내가 수영을 배운 지 꽤 지난 시점이었고, 오리발을 하고 접영에 열중할 때였다. 아픈 허리 때문에 정형외과를 드나들다가 시작한 운동이었다. 공포의 물도 견딜 수 없는 고통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접영의 진정한 고수가 되는 요령을 깨우치지 못한 나는 허리 통증이 다시 도져 수영을 쉬고 있었다.
친구가 스킨스쿠버를 권했다. 심해가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다. 두류수영장에서 기본기를 익히고 바다로 갔다. 고요와 어둠이 가득한 수심 15미터는 내가 가 본 가장 깊은 바다의 바닥이다. 그럼에도 신비로움과 경이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새롭다. 바다의 시간은 푸르게 흘러갔다는 말을 당신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나는 그대와 《모비딕》을 꼭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
모비딕, 아합 선장의 한쪽 다리를 빼앗고 레이첼호의 선장 아들을 삼켜버린 바다의 제왕. 포경선들의 무자비한 포획으로 죽음에 이른 동족의 복수, 그들만의 심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자연 앞에 조금 겸손해질 수 있을까. 피쿼드호의 아합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선원들, 식인종 퀴퀘그까지 삼켜 버린 바다에서 최후의 생존자였던 이스마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주의 한 점인 지구, 푸른 바다의 티끌 같은 인간의 삶을 다시 훑어보게 한다. 그뿐인가. 인간들의 무수한 작살에도 끄떡 않는 향유고래의 거침없는 몸짓을 보노라면 당신들이 뭘 하든, 나는 바다의 길을 가겠다는 그의 강력한 메시지가 읽힌다.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의 푸른 물을 쉼 없이 뿜으며 주어진 오늘을 기쁘게 노래하겠다는 뜻처럼 보인다. 그러나 뭐가 됐든 절대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아합 선장은 또다시 그의 등에 작살을 꽂는다. 상대가 죽을 때까지 그의 지리멸렬한 싸움은 계속된다.
아합은 모비딕을 잡으려고 던진 작살들의 밧줄에 몸이 묶여 결국 생을 마감했다. 백경은 아합을 기억할까. 부서진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사망한 피쿼드호의 많은 생명을 알고는 있을까. 원수를 갚겠다는 한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참사는 끔찍하다. 그리고 그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나에게, 너에게, 우리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네가, 우리 그리고 그들이. 나라면 아합처럼 잃어버린 다리를 찾기보다 차라리 레이첼호의 선장처럼 가지고 있는 많은 것에 남은 날들을 걸겠다. 그리고 가끔 푸른 바다에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바다로 사라지는 모비딕의 꼬리를 바라보며 한 번 더 감탄하겠다. 그것이야말로 너의 공간을 인정한다는, 나의 공간을 인정해달라는 무언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나를 묶고 있는 모비딕은 무엇일까. 삶이 복잡할수록 나를 동여매는 밧줄은 굵고 튼튼하다. 대체로 그것들은 욕망이나 탐욕, 미움과 시기, 분노와 절망 따위로 불린다. 그 와중에 아합이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잠시 속내를 드러낸 자가 있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이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죽을 걸 알았지만 아합 선장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사람.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 그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다. 아합 선장이나 이스마엘이 아닌, 그가 들려주는 고래의 이야기라면 실패로 끝난 내 접영을 접붙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스타벅스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으려나. 고래의 흰 꼬리가 선명한 머그잔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그를, 천천히 기다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