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이가 나의 시간을 건너가고 있기에

by 글똥

목요일, 4일째 근무를 하고 집으로 오면 늘 파김치다. 수술 이후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찬바람 퇴근길에 소모된 한 꼬집의 기력도 이럴 땐 아쉽다. 리클라이너 소파의 전기방석을 켜고 무릎 담요를 덮고 눈을 감는다.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를 들으며. 누구는 이 시간을 호사라고 한다. 하루가 힘들었지만 지금 쉴 수 있음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가만히 시간이 흐른다. 엉덩이가 뜨끈뜨끈하다. 노곤함에 스르르 눈이 감길 만도 한데 어째 오늘은 더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수위를 넘어선 피곤함, 하지만 눈만이라도 감고 있으련다. 소파 위의 다 마른빨래도, 식탁 위의 그릇도 잠시 잊는다.


무위(撫慰)의 시간, 여유, 진정한 휴식.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에 누워 있건만 뜬금없이 눈물이 난다. 나의 감정 세포들이 현실의 무게를 뚫고 이성을 이겨버리는 시간. 힘들었던 하루가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결에 조용히 가라앉는다. 아주 긴 호흡으로 하루를 삼키고 천천히 오래 밭아내면 딱딱했던 가슴도 말랑말랑해진다.


바삐 하루를 쪼개 살던 때도 있었다. 이제 그 시절은 건강한 나의 사십 대까지로 매듭짓는다. 오십 대부터는 조금씩, 천천히, 느리게, 쉬어 가는 삶이 나의 것이다. 요만큼 아파보고 이만큼 살아보니, 세상의 많은 이가 나의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병들지 않고는 인간조차 될 수 없다는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말이 위로의 손을 내미는 저녁,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을 견디고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산 내 生의 날을 응원하노니, 내일은 더욱 즐거우소서. 모레는 종일 행복하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가장 기쁜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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