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지? 난데없는 그녀의 전화. '언니'라고 불러주는, 사회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이 중의 한 명. 코로나19로, 개인적인 서로의 가정사로 더욱 두문불출이었던 관계였기에 더 놀랐다.
수필 모임과 독서회에서 인연을 맺은 지는 10년이 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던 때도 있었고, 늦둥이를 가져 배가 불렀지만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읽던 그녀의 시절도 보았다. 세월은 무던히 흘러 그 아기가 벌써 4학년이라니, 그녀의 나이보다 내가 이만큼 늙었다는 사실이 통화 중에도 자꾸 확인이 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나를 나이 많은 사람으로 떠미는 게 싫지는 않지만, 그녀가 인정해 주는 그 그릇이 못 되는 것 같아 자꾸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직장을 다니는 그녀의 늦은 퇴근길. 별 것 아니라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며, 집 앞 마트에 맡겨 두었으니 찾아가라는 그녀의 선물을 방금 들고 왔다. 혹시나 코로나19의 염려로 잠깐의 만남도 조심하자는 그녀의 배려.
종이 가방을 열자 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피워 낸 12월의 꽃들을, 나는 소파에 곱게 펼쳐 놓고 오래 들여다본다. 알록달록 다양한 꽃이 수 놓인 무릎 담요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이 실과 저 실을 묶고 엮은 흔적이 마치 화려한 팔색조 같다.
수술과 치료를 끝내고서야 독서방 회원들에게 내 소식을 전했다. 이런저런 주고받은 말이 많았으나 다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일어날 때 힘들다는 내 말을 마음에 담아 꽃을 뜨기 시작했다는 그녀.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는 말에 나는 울컥, 그러나 행복했다. 내가 뭐라고. 내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하고 생각해주는 그녀가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따뜻하다. 부드러운 털실이 몸에 닿을 때마다 꽃들이 봉긋한 망울을 열고 향기를 뿜어낸다. 삭막한 겨울, 세상의 꽃들은 지고 흑백의 침묵이 가득한 날에 내게로 온 꽃들. 구름 낀 하늘이 서글플 때마다 펼쳐 놓으면 위로의 꽃밭이 될 것 같다.
꼿꼿하고 반듯하게 서 있는 게 힘든 요즘, 기울어진 내 몸을 받쳐주기 위해 꽃을 들고 내게로 온 人, 그녀가 내게는 가장 향기로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