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나간 자리는 흔적을 남긴다. 그 현장을 요즘 들어 자주 목격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스프레이 건을 잡는다. 시원한 물줄기가 남편의 자취를 지운다. 어느새 말끔해진 자리, 뚜껑을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그 자리에 앉는다.
어느 날부터 흔적을 볼 때마다 동시다발로 일어났던 분노가 사라졌다. 나의 짜증과 잔소리, 스트레스와 함께 소란스러웠던 청소의 시간. 거친 물줄기가 날 비웃듯 늘 몸에 튀어 자국을 남겼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날 이후가 아닐까 싶다. 건강 검진, 결과, 수술, 치료, 가까이 느껴졌던 죽음과 앞으로의 남은 삶에 대한 생각이 복합적으로 나를 뒤흔들었던. 지금부터 복잡하고 머리 아픈 건 패스해 버리고 무조건 즐겁고 신나게 살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선포하였던. 최대한 긍정의 사고로 모든 사물과 생명을 바라보아야겠다고 다짐한.
그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애쓰다 굽은 등을 이제 펴고 싶어도 안 되는, 등뼈조차 이미 그 세월에 갇혀버린 한 남자의 안타까운 흔적.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낯설고 어색하지만, 마음은 훨씬 편하다. 세월은 그래서 흘러가나 보다.
등 푸른 생선의 펄떡거림처럼 숨 가빴던 몸짓이 조금씩 잦아들고 어쩌면 멈춘 것 같은 지금이 좋다고 고백하는 것,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겠지. 이렇게 시간이 흘러 노년의 어느 날, 나는 또 오늘처럼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