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라는 나라에서는 비누를 '사분'이라고 한다. 오래전 실크로드가 이어준 인연이었을까. 내 고향 어릴 적 비누도 '사분'이었다. 잊고 있었던 낱말이 내게로 왔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사분'이란 말을 내게 가장 많이 들려준 목소리의 주인공이었기 때문 아니겠나 싶다.
지난 연말에 동갑내기 친구 넷이 밥을 먹었다. 그날도 역시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며 한 때를 보낼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우리는 이미 종종 그렇게 만나기도 하였기에 나는 유안진 님의 <터무니>를 들고 갔다.
커피와 파스타와 피자, 샐러드와 돈가스, 특별한 가지 요리를 먹고 마시는 동안 우리들의 시간이 무르익었다. 한 친구는 부드럽고 포근한 보라색 목도리를 나눠 주었고, 또 다른 친구는 '사분'이라고 적힌 비누를 나눠 주었다. 도도한 귀부인이 황금 마차에서 내리는 그림의 철제 박스가 매력적인, 고급 비누였다.
벗을 생각해 준 그 마음이 귀해 선반 위에 모셔두고 한 번씩 그림을 볼 때마다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았다. 선뜻 비닐을 벗겨 사용하지 못하고 눈 호강, 코 호강만으로 해가 바뀌고 금세 한 달이 지났다.
오늘, 다시 넷이 뭉쳤다. 차를 마시며 소소 담담, 일상을 나누었다. 소란스럽지 않게, 화기애애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쉰 하나가 된 아줌마들의 대화는 듣는 것과 말하는 것,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을 잃지 않고 오래 이어졌다. 독서와 필사, 사색의 시간이 청춘의 시절부터 몸에 밴 갑장들이 만났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오늘부터 그녀가 준 사분으로 세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비닐을 벗겨 거품을 냈다. 지중해의 올리브 오일이 내 얼굴의 하루치 먼지를 말끔히 거둬갔다. 비누 한 장이 주는 맑음의 저녁, 몸과 함께 마음도 말갛게 씻겨진 듯한 기분이 좋았다. 웃음 환한 거울 속 여인도 더 예뻤다.
무엇이든, 우리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그녀의 마음이 오늘따라 내게 깊이 스민다. 아마 스스로의 존재를 더욱 귀히 여기자는 그녀의 말이 이제야 내게 당도한 것 같다. 나를 위해 침향을 피우고, 나를 위해 차를 내리고, 나를 위해 책을 사는 그녀의 일이 다 그러하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말하고 거침없이 행동한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오늘에서야 나는 알았다. 수백 아니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냈던 그녀였기에, 고독의 시간을 마주한 오래된 새벽이 지나갔기에 지금의 한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을.
사람을 알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지점에 이르면 스르르 이해가 되는 통로가 열리기도 하는데 오늘이 내겐 그렇다. 죽비처럼 어깨를 탁! 치고 지나가는 무엇이 마음에 와닿았는데 사분 덕분인지, 사분에 담긴 벗의 마음이 잇닿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엄마와 아내와 직장인의 삶 속에서 무너진 몸을 일으키기 위해 지금은 많은 것을 절식 중인 그녀, 준비해 간 다과를 먹지 못하는 그녀에게 이제 내가 사분 같은 선물을 해 줄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