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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말했다

by 글똥

굳어버린 손가락, 뻣뻣한 관절을 위해 가만히 몸을 움직이는 아침, 겨우 재운 아기가 깰까 봐 소리 없이 움직이는 엄마처럼 내 몸을 보듬는다. 눈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간다. 제일 먼저 물세례로 잠든 세포들을 깨운다.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알람이다. 식탁 위엔 남편이 깎아놓은 사과, 한 입 베어 물고 커피를 내린다. 오늘은 인도네시아, 내 기억의 저장고에 딱히 그 나라를 떠올릴 것이 없다. 빈약한 사고를 위로할 음악을 찾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듣는다. '내가 사랑하는 은경 선배님에게'라며 보낸 그녀의 음악 선물이다. 어제 받은 선물을 오늘 아침에 풀었다. 지금 거실에는 커피 향과 햇살을 휘감은 감미로운 선율이 가득하다.


한 달 뒤면 우리의 모임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말들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때에 전할 오늘의 기쁨을 미리 적는다. 오선지의 음표처럼 시간의 선들을 지나며 새기는 지금의 행복을.


오늘도 나는 그대 덕분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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