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 소리와 함께 지하 1층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헉-예상치 못한 만남에 나는 당황한다. 사람이다. 이 새벽에 누구를 만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못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그녀는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한가 보다. 안녕하세요-그녀의 목소리는 새벽의 모든 것과 이미 동지가 된 듯 밝고 상쾌했다.
12월의 새벽 어느 날,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쿠팡 새벽 배송 중인 그녀를 만났다. 짧은 만남, 공기 중에 흩어진 그녀의 목소리, 흔적이 울림이 되어 나를 따라왔다. 새벽, 겨울, 추위, 게으름, 고단이라는 삶의 꼬리에 물음표를 달고. 지금의 나, 현재의 내 모습이 찰나의 스침에 묘하게도 부끄러워지는 건 왜였을까. 새벽 공기를 가르고 내게로 온 그녀의 한 마디에 문득 '나의 삶은 진정 고단하였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의 새벽은 오십 년 동안 잠 속에 묻혔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밤 12시를 넘어서 맞이하는 한밤의 시간이었다. 새벽 한 두시에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침을 훌쩍 건너 정오에 가 있었다. 그때도 나는 고단한 나의 삶을 이겨내느라 온 힘을 다해 살아내고 있었다. 삶의 패턴이 달라진 것은 몸이 신호를 보내면서부터였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그제야 실감 났다. 수술과 회복의 수개월을 보내고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자기 계발을 이유로 바쁘게 쫓아다니던 모임을 모두 취소하였다. 퇴근하면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났다. 나의 새벽은 그렇게 내 삶의 첫자리에 들어왔다.
새벽은 여유다. 행동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늘 미루어 둔 주방의 설거지와 요리를 하게 한다. 급하게 읽던 책을 펼쳐 곱씹어 먹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온통 나로부터 시작하는 물음이 가득하지만 결코 바쁘지 않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다가 커피를 내리고 오늘 날짜의 일력을 정리한다. 잠시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시간을 음미한다. 모든 형용사가 들뜨지 않고 마음에서 잔잔하다.
그녀의 삶이 나보다 고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밥벌이의 새벽과 신께로 향하는 새벽의 깊이와 무게를 저울질할 자가 있을까. 모든 계시는 세상을 관통한다. 그러므로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짧은 스침이었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나를 후려치는 죽비였다. 참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세상을 다 이긴 듯했다. 낯선 이를 향한 짧은 한 마디에 삶을 통째로 쥐고 흔드는 그녀의 자유가 느껴졌다. 내가 평생을 바라고 원했던 자유, 어쩌면 가장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한 사람이 오늘 내 앞에 우뚝 서 있음으로 나는 내 오랜 고민의 답을 하나 찾은 듯했다. 마치 소풍날의 보물찾기 놀이처럼. 오늘은 이 쪽지를 펼쳐 하루의 감사를 가득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어진 삶은 사람마다 다르고 받아들이는 태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삶일지라도 우리는 날마다 살아갈 의미를 찾고 최선을 다해 그 길을 나서야 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톺아 새벽을 가로지르는 그녀가 나의 스승이 된 날, 오늘 내가 보내야 하는 모든 시간을 넉넉히 이겨 낼 정체성을 오롯이 전해 준 그녀의 하루가 내일도 여전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