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시인이 되었으면 참 좋았겠다. 337쪽 '별은 다른 세상의 사냥꾼들이 밤에 피우는 모닥불'이라니 말이다. 칼 뿐 아니라 383쪽의 칸트는 안드로메다자리의 M31 나선형 성운에 섬우주'island universe'라는 이름도 지었다. (철학과 과학 사이 어딘가에 문학이 돌연변이처럼 탄생한다는 이론 하나가 지금 막 완성되었다. ^^)
밤하늘의 등뼈/쿵! 족
하늘은
거대한 짐승
그 짐승의 뱃속에 우리가 있나니
밤하늘의 등뼈가 빛나는 밤
은하수는
오늘도 밤을 지탱하는
그 짐승의 등뼈
은하수가 무너지면
밤은
산산조각나리니
보츠오나공화국의 칼라하리 사막의 쿵! 족의 해석은 더욱 재밌다. 거대한 짐승이라고 표현한 하늘의 뱃속에 우리가 산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의 은하수는 그 짐승의 등뼈이며 밤의 등뼈인 은하수가 밤을 지탱하고 있다 믿었다. 그 등뼈인 은하수가 무너지면 밤은 산산조각 난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상상력이 굉장하지 않은가. 칼과 칸트를 뛰어넘는 쿵! 족의 DNA가 내게도 티끌만큼 섞여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시적 감성에 나의 세포들이 춤추는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니 말이다. 말로 모건의 《무탄트 메시지》에 나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참사람 부족이 쿵! 족의 후예는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잠깐 해 본다.
이오니아의 많은 과학자들은 부유한 철학 계급의 반대편에서 빛을 발한다. 이오니아의 첫 과학자 탈레스도 그의 가난이 과학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이오니아의 실용 능력을 보여주는 6세기의 6km의 터널도 폭군 폴리크라테스의 해적선이 잡아 온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원자를 발견한 테모크리토스도 그리스 이오니아의 식민지 아브데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연구에만 몰두하기 위해 여자와 아이, 성과 담을 쌓은 남자였다.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으뜸 매력은 즐거움이 인생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학문하는 남자인 것이다. 존경하는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가서 부끄러워 자기소개도 못했다는 그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핍을 씨앗 삼아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는 본이 된 듯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은 그리스의 100드라크마 지폐를 통해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기원전 5세기의 아낙사고라스도 이오니아 출신이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주범 페라클레스가 아테네로 데려온 인물이다. 이후 아낙사고라스가 불경죄로 투옥되면서 이오니아의 과학은 쇠락의 길을 걷고 이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세상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중국도 천문학이 굉장히 발달하였으나 네이버 시선은 중극의 쇠락이 엘리트 계층의 경직된 사고라고 주장한다.
놀라운 것은 철학의 길을 열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노예 억압을 정당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노예 사회에서 편히 살던 인물이었다. 플라톤이 테모크리토스의 책을 모조리 불태웠으며 심지어 호메로스의 책도 불태우라고 했다니 지금까지 들은 대로 마냥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교과서 지식으로 알고 있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보이저호를 타고 코스모스를 항해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음이다. 노매드의 항해다.
이오니아의 마지막 과학자 아리스타르코스를 아는가? 사모스 섬의 그는 우주 드라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의 문학적 감성은 과학과 철학의 돌연변이처럼 태어나 통찰의 시간을 먹으며 뜨고 지는 해 앞에서 더욱 충만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있는 것이라는 우리들의 표현의 오류에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