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마냥 좋아서 그렇게 드나들던 숲도 기억에서 잊혔다. 아팠다는 사실도, 수술했다는 기억도 저만치 밀려났다. 현실의 힘은 대단하다. 지금부터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은 영혼의 힘이라고 여겼는데 나는 어느새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세상의 유혹에 다시 감금되고 말았다.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던 형용사들이 하나씩 죽어나갔다. 깨달았을 때, 나의 마음은 이미 공허로 가득 찼다. 다시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간. 무너진 자존감과 무기력이 동시에 나를 넘어뜨린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실감한다. 무엇으로 위기의 언덕을 넘어야 할까 고민한다. 나를 지탱하던 등뼈들은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책들의 부엌>에서 잃어버린 형용사를 찾는다. 덜컥 덜컥 나는 자꾸 형용사에 걸려 넘어지기를 희망한다. 식탁 위의 커피와 빵 한 조각의 풍경이 이때 더욱 형용스럽다.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그 시간을 잘라 멈추게 하는 것, 책 속의 형용사들이다. 이 한 권을 천천히 다 읽고 나면 나는 드디어 형용사들에게 갇혀, 표류하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휘어진 나의 등뼈들을 곧추 세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