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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Aug 30. 2021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 2019년




드디어 섬이다. 평일의 가장 싼 티켓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제주도엘 왔다. 모자와 선글라스, 빨간 원피스 위에 백팩을 메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여행용 가방엔 화구가 잔뜩 들어 있다. 십 년 만이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모퉁이를 돌면 내가 머물 게스트 하우스다. 덜컥거리며 내 뒤를 따르는 여행용 가방의 바퀴들이 전사하기 직전, 현관 앞에 다다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면식도 없는 주인의 체취가 느껴졌다. 어째 수십 년을 함께 산 내 남자의 냄새와 닮았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SNS에서 알게 된 그는 지방의 신문기자였다. 밥벌이의 고단함으로 전업을 하기 전,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글을 썼다. 그런데 한 달이 일 년이 되고 이 년이 되더니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몸과 마음을 아예 그 섬에 다 내려놓고 말았다.    


지금은 그가 뭍으로 나가 있는 때다. 제주에 둥지를 틀었으나 그의 수십 년 인연은 뭍으로 그를 자주 불렀다. 그때마다 집을 지켜 줄 동지를 찾는다는 광고를 냈다. 그 광고의 첫 댓글을 내가 달았고 냉큼 나는 여기로 온 것이다. 이제 겨우 첫날인데 나는 심장이 쿵쾅거려 짐을 풀지도 않고 집 밖으로 나섰다.    


바람이 거세다. 모자의 끈을 동여매고 바닷가로 향한다. 높이 자란 갈대와 수크령이 내 키를 넘어 시야를 가린다. 철썩거리는 파도의 노래를 들으며 길을 찾는다.     


바다 앞에 섰다. 시선이 멀리 수평선에 닿는다. 하늘과 맞닿는 곳에 배가 있다. 떠나는 배인지 돌아오는 배인지 알 수 없다. 마치 허공에서 조금씩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새다. 하늘도 바다도 푸르고 푸르다. 바람이 그 푸른 공기를 싣고 예까지 달려온다.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지척의 물빛, 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그 물빛만 오직 찬란하다.    


화가 마리안느는 윤슬의 에메랄드 바다를 헤엄쳐 이 섬으로 왔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밀라노의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했던 언니는 초상화 작업 중에 자살하고, 동생인 엘로이즈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발끝까지 끌리는 치렁치렁한 원피스를 입고 옥양목으로 만든 흰 앞치마를 두른 채 붓을 쥔 그녀의 모습이 모델보다 더 시선을 끈다. 물감으로 얼룩덜룩한 그녀의 손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가의 길을 가는 마리안느는 대체로 삶이 자유롭다. 결혼하는 것만이 도시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엘로이즈는 그녀와의 감정을 뒤로 한 채 밀라노로 떠난다. 그때 그 시절, 제한된 여성 화가의 활동 때문에 전시조차 할 수 없었던 마리안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낸 갤러리에서 비로소 엘로이즈를 만난다. 그녀의 딸과 손에 쥔 책의 28쪽에 손가락이 끼워져 있는 그림 속에서 말이다.      


섬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감춰진 여인들의 초상은 제각각 사연이 있다. 그래서 슬픔은 모든 것에 비례한다. 펼쳐진 치마폭의 너비만큼, 선명한 초록과 빨강이 뿜어내는 원색의 원피스만큼, 세차게 몰려와 사정없이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만큼.     


섬으로 보낸 초상화로 선을 보고 시집온 엘로이즈의 어머니도, 바닷가를 쉼 없이 달리고 허공에 매달려 배 속의 아이를 없애려고 애를 쓰는 혼전 가정부도, 얼굴도 모르는 밀라노의 남자에게 가지 않으려고 초상화를 거부하는 엘로이즈도, 달밤의 파티에서 숙명처럼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동네의 유부녀들도.    


배 위에서 그녀의 화구 박스가 바다로 떨어졌을 때, 즉시 몸을 던져 자신의 것을 지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레임 밖으로 과감히 나갈 용기를 가지라고 이 영화는 처음부터 보여 주고 있다. 소리 없이 강하게 그녀들의 전쟁은 영화 곳곳에서 승전가를 부르고 있었다.     


세 여인의 오르페우스 이야기도 기막힌 반전이다. 그는 독사에 발이 물려 저승 세계로 간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려고 하데스 앞에 선다. 저승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약속.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를 따라 지상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그녀가 그를 먼저 불렀을 수도, 그래서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을 거라는 그녀들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는 복수극을 보듯 짜릿하고 통쾌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나를 가볍게 관통할 때의 이야기다.    


그녀들의 생각과 선택은 이러하다. 사랑이 아닌 시인의 삶을 선택한 오르페우스처럼 마리안느, 당신도 사랑이 아닌 화가의 삶을. 에우리디케가 스스로 저승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엘로이즈, 그녀도 감정을 속이고 결혼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서로의 자유를 위해 자유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여인들의 운명. 그녀들의 조심스런 몸짓은 어쩌면 조선의 궐 안 궁녀들처럼 시대의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자유를 향한 몸짓은 아니었을까. 속박이 없는 온전한 삶의 영역에서 다시 역사를 써내려갈 단초 같은 영화에서 나의 자리를 더듬는다.    


시간이 흐른다. 붉은 노을이 지고 바다에 그 빛이 넘실거린다. 해넘이 동안 그림자들이 흔들거리며 나를 밟고 간다. 마지막 해가 떨어지는 찰나 노을이 길게 바다를 건너 일직선으로 이어지더니 어느새 나의 붉은 치마 끝자락에 닿았다. 이제 타오르는 나의 초상을 위해 일어나 함께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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