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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Sep 01. 2021

카일라스 가는 길

    

감독 정형민

출연 이춘숙, 정형민

개봉 2020. 9. 3.    


바다가 없는 나라 볼리비아에는 소금사막이 있다. 나의 버킷리스트인 그곳은 오래전부터 내 닉네임이 됐다. 비가 내리면 소금사막에 물이 고이고 하늘과 소금바다가 만나 여행객들을 홀리는 곳, 한국에서 그곳까지 가자면 미국을 거쳐 페루, 거기서 다시 볼리비아로 가야 한다.    


나는 매달 여행을 위한 경비를 모으며 50대 중반엔 그 땅을 밟으리라 희망했다. 이년 전, 코로나19가 터졌고 하늘길이 제일 먼저 막혔다. 곧 끝나리라 여겼던 역병은 갈수록 태산,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소금사막 여행도 조금씩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삶의 이유 하나가 툭 부러져 시들했던 요즘, 봉화 산골 할머니 이춘숙 여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25세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37세에 남편을 여읜 이후 홀로 남매를 키우며 살았던 그녀. 2017년 봄, 84세의 그녀는 아들 정현민과 함께 카일라스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불교의 성지 혹은 우주의 중심이라 불리는 티베트의 카일라스로 가는 길은 젊은이도 만만치 않은 노독의 행군이다. 힌두교와 라마교의 성지인 수미산 순례는 아내와 엄마의 자리에서 뒤로 미루었던 청년 시절 그녀의 열정과 꿈이기도 했다. 내  마음이  더욱 끌리는 이유다.     


2014년, 그녀는 아들과 함께 네팔 히말라야산맥을 먼저 다녀온다. 그때가 80세다. 몽골의 돌 언덕을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후, 2017년 9월 1일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그녀는 카일라스 순례를 시작한다. 일주일 뒤, 고비사막에서 올리는 남편의 제사와 먼저 하늘로 보낸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노인의 모습이 내게는 나약함보다 강인한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으로 클로즈업됐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떠난 그녀의 순례는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기도가 먼저였다. 지팡이를 짚고 혹은 무릎을 끌며 기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림과 감탄, 간혹 궁금증과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하여 85세의 인생 선배가 전하는 모든 말이 내게 이르러 다양한 문장 부호로 돋을새김 되는 시간이었다.     


# 작은따옴표 ‘ ’

2019년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아들인 정현민 감독은 여행과 순례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행은 언제든 발길을 멈추고 돌아올 수 있지만, 순례는 일생에 한 번 온 정성을 모아 떠나야 하고 그 길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고.     


# 큰따옴표 “ ”

1934년에 태어난 이춘숙 할머니는 대학을 다닌 신여성이다. 농촌지도소 초대 공무원으로 일하며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당시 모습도 영상으로 나온다. 21세기를 사는 나는 그녀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이력이다. 그런데도 열심히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반사적 광영’을 향한 내 마음이 시선을 놓칠 수 없음이다. 파미르 고원에서 85세의 생일을 맞이한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 물음표 ?

아름다운 일출과 푸른 새벽하늘이 있는 곳, 카일라스가 나의 버킷리스트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독서 모임의 갑장에게 영화를 소개했더니 다음 날 구매해서 보고 있다며 소식을 전했다. 십 년 전, 적금통장을 탈탈 털어 남편, 아들, 딸과 함께 떠난 히말라야 자유여행이 생각난다며 감회가 새롭다 했다. 그녀는 요즘도 주말이면 남편과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기 위해 시간을 낸다. 길 위에서 풀어내는 온갖 에피소드는 아마 조만간 책으로 엮어 나오지 싶다. 


# 느낌표 !

바이칼 호수, 몽골 대초원, 고비 사막, 알타이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 고원 그리고 티베트의 카일라스산. 낯설고 생소한 낱말을 나열만 하여도 가슴이 벅차다. 창고에서 잠든 지 오래인 배낭을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자작나무가 있는 타지키스탄의 작은 마을은 잊지 말고 꼭 들러야겠다.    


# 말줄임표 ……

20,000Km의 길을 3개월에 걸쳐 완주한 할머니 이춘숙. 순례길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객들은 그녀를 향해 엄지를 내세우며 “슈퍼 마마”를 외쳤다. 얼음길과 칼바람 앞에서도 행군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 울면서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주문을 걸던 모습, 삶이란 누구에게나 고행일 수밖에 없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이 난다.    


# 쉼표 ,

덜컥, 달려가던 인생 이정표에 예고 없이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한다. 벌써 오십일 때는 서글펐지만, 이제 오십이니 아직도 청춘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모래바람 부는 고비 사막에서 쉼을 반복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내게는 희망의 언어다. 잠시 쉬어가는 길은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는 쉼표의 자리라고 내게 거듭 당부하는 힘이다.     


# 마침표 .

눈앞의 카일라스, 수미산으로 향하는 그녀의 몸이 꽁꽁 언 산길에 미끄러질까 조바심이 났지만, 순례를 완성하는 마지막 여정, 노독을 드디어 내려놓는 그녀를 보며 내 마침표가 닿아 있을 볼리비아의 여정을 나, 소금사막은 오늘부터 다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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