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똥 Nov 16. 2021

지구를 지켜라

코스모스를 읽으며 처음 안드로메다를 만났다.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지만 신비로웠던 은하를, 신하균 주연의 영화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뜬금없이 더 즐겁고 신났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기대한 상상 바깥을 서성거리며 희와 락을 버리 나를 발견한다. 그때 그 별은 아름답게 빛나던 우리의 별이었으나 오늘 이 별은 글쎄다. 벌거벗은 안드로메다 왕자와 윙윙거리는 요상한 주파수 대화는 생뚱맞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주인공 병구는 가난하다. 힘없는 서민이다. 당신과 나처럼. 잠깐 전태일이 생각났다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친 지강헌저만치 스쳐갔다. 러시아에도 있지 않았나. 막심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의 주인공 빠벨  말이다. 오드득 오드득 역사를 곱씹어보면, 안될 줄 뻔히 알면서도 안드로메다에 맞선 인간들이 많다. 바위에 부딪쳐 깨진 계란들이 널렸다. 어쩌면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유가 그들 덕분인지도 모를,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지금도 여기저기서 열심히 물파스를 바르고 있다.


생각하건대 감독은 아마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 같은, 비인간적인 세상에 할 말이 많았나 보다. 탐욕과 이기심이 들끓는 늪에서 숨구멍을 찾아 몸을 비트는 사람들도 이만큼이나 된다고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안드로메다인들에겐  그들의 잘못을, 지구인에겐 여전히 병구 같은 당신들의 이웃을 와락 안겨주고 싶었나 보다. 이 영화를 자세히 보고 뉘는 뉘우치고 뉘는  힘을 내라고 소리치고 싶었나 보다.


안드로메다  외계인과 싸우는 병구고달픈 투쟁이 눈물겹다 못해 슬프다. 뻔뻔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추악한 안드로메다를 이길 방법은 없을까.  발등의 살 껍질을 벗기고 물파스를 열심히 바르는 병구가 너무 순박해서 웃음이 난다. 결코 상대를 죽일 수 없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병구는 그대와 나, 우리의 현주소다. 죽음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길 수 없는 안드로메다이기에 어딘가 익숙한 병구의 과거를, 아픈 상처를 토닥거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바로 나를 향한 위로가 되겠다.


감독은 세상이 얼마나 요지경인지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한 것 같다. 삐리 삐리 삐리 불빛 반짝이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때수건과 물파스를 들고 등장하는 병구에게 누가 적개심을 가지겠는가. 일단 그들의 인생을 코미디로 만들어 맘껏 웃게 하더니 뻘 같은 병구의 슬픈 과거로 우리를 서서히 끌고 간다. 감독이 쳐 놓은 엉성하지만 치밀한 덫에 걸린 줄도 모르고. 우리의 생애사 같은 현실을 오버랩시키며 그것도 매우 적극적으.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했던가. 죽었다 싶은 병구가 다시 일어나 싸우고 또 싸운다. 끝없이 싸운다. 포기하지 않고 숨이 다할 때까지 싸우며 몸으로 말한다. 당신도 이렇게 지구를 지키라고. 병구는 부도덕한, 정의롭지 못한, 사랑하는 가족을 괴롭히는, 나를 죽이는, 자연을 훼손하는 모든 안드로메다와 싸우는 휴먼이다.  


어떻게 지구를 지키나, 누가 지구를 지키나. 안타깝게도 신하균은  죽었다. 백윤식뻔뻔스럽게 자기 별로 돌아갔다. 슬프지만 역사는 그렇게 늘 되풀이된다. 나는 신하균이 아니라고, 백윤식도 아니라고 누가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  나는 피해자였고, 또 다른 이에게 나는 가해자였으므로. 하루에도 여러 번 지구와 안드로메다를 들락거리는 초신성 능력자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과연 기뻐할 능력인가. 슬픈 현실인가. 또다시 나의 정신세계는 지구도 안드로메다도 아닌 블랙홀에 텀벙, 빠진다. 


우리 집 약상자에 들어 있는 물파스는 이제 누구에게 발라야 하나. 묻노니 당신의 발등은 안녕하신가.





매거진의 이전글 카일라스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