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by 글똥





바보 같다. 그 남자, 웃긴다. 실체가 없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다니.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이 생각난다. 여인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남자, 그가 곧 테오도르다. 피그말리온 같은 남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라는 무서운 상상이 영화를 보면서 든다. 제발,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나는 이미 죽어야 할 텐데.


아바타를 보면서 장애를 가진 남자의 무한 자유의 몸과 사랑을 응원했다. 다큐로 제작한 자녀를 잃은 부모의 아픔을 달래 줄 가상공간의 만남,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죽은 아내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누군가의 추억과 아픔을 위한 공간을 운영 체제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시 만남과 위로, 사랑했던 기억, 듣고 싶은 목소리, 보고 싶은 얼굴은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그리움이 먼저였다.


그녀, 그래서 내게는 더 충격이다. 엄청난 딥러닝으로 동시 만남과 동시 사랑이 가능한 세상이라니. 순진하게도 영악하고 약삭빠른 그녀에게 빠져드는 그 남자, 멍청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다. 꽃뱀도 그런 꽃뱀이 없다.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고도 매우 논리적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남자의 심리를 다 파악하고 먼저 선수를 친다. 매번 남자는 그녀에게 당한다.


기계와의 데이트라니. 충격의 쓰나미가 쉴 새 없이 몰려온다. 내가 늙은 건가. 시대를 따라가기에 이미 나는 고장 난 퇴물인가 싶다가도 정신을 붙들어 맨다. 어떤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을 버리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 아바타도 그랬고, 천 개의 파랑도 그랬으며, 아일랜드, 어디 갔어 버나뎃도 그랬다. 모든 영화와 책은 내게 마지막 쉼표를 남겼다. 도대체 그녀, 어디까지 인간을 농락할 셈인가.


휴, 다행이다. 그 남자, 정신을 차렸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 사고로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보여 주었다. 두려움이 조금 가신다. 이 결말이 없으면 공포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불편하고 힘들고 버거웠던 영화다. 그녀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당연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기에 영화의 결말은 더욱 빗나가야 하고 휴머니즘을 깔아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줌, 메타버스, 개더 타운. 말만 들어도 어지러운 낱말들 곁에 더 많은 사랑, 그리움, 아름다움, 웃음, 만남을 적는다. 말들이 겨룰 때 나는 이편에 서서 열심히 응원하고 용기를 보낸다. 꽃이 피고 지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태양과 달이 지구를 비추는 한, 그녀보다는 내가 더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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