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아직은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은

by 글똥

가을이 깊다. 숲의 가을은 더 깊다. 숲에 가득한 붉은 낙엽을 밟는다. 아직은 물기를 가둔 잎들이다. 바스락 소리를 내려면 계절에 몸을 더 내주어야 한다. 가지에 매달린 잎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 햇살이 내려앉을 때마다 빛난다. 햇살이 잎들을 가을의 꽃으로 물들였다가 이내 낙엽이라는 순리의 자리로 내려가게 한다. 아름다운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잎새들의 노래는 가을에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청춘의 푸르름은 여름을 지나고 가을의 언덕에 이르러 물들기 시작한다. 물든다는 것, 그것은 물기를 조금씩 거둔다는 것이다. 거둔 자리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하나를 내어 주고 다른 하나를 맞이하는 것, 시간은 젊음을 내어 준 자리에 중년의 나를 빚어 놓았다. 조금씩 물기를 거둔 몸에 자라는 은백색의 머리카락과 주름마다 음영을 가두고 깊어가는 모든 것을 나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은 그래서 빛난다. 늦가을의 자연으로 몸을 들이면 늘 푸르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고민 없이 편히 내려놓게 한다. 삶의 욕심을 버리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려 준다. 한 줌의 흙으로 지어진 우리의 육체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한다. 그 시기가 가까워지는 중년의 어느 가을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래서인가. 가을의 숲은 젊은이보다 중년과 노년의 걸음으로 가득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다. 산책로에 놓인 의자에서 굽은 등을 보이며 쉬고 있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가끔 맨발로 걷는 이도 만난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숲에 깃든 나무 한 그루처럼 그 모습이 풍경이 된다.


순응하는 삶은 거역하는 삶보다 아름답다. 이 모든 순간들이 숲과 나의 무수한 교집합 중의 하나가 된다. 청춘과 건강이 지나간 자리에 가을 같은 멋진 중년의 계절이 온다는 것을, 숲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찬란했던 형형색색이 순식간에 사라지듯 가을이 더 깊어지면 숲은 더욱 무채색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색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가을숲. 그 속으로 나는 기쁘게 몸을 들인다. 혼자이나 홀로 걷는 길이 아님을 안다. 바스락거리는 잎들이 내내 벗 되어 함께 걷는 길이다. 묵묵히 잠자던 내 안의 내가 깨어나 함께 걷는다.


숲의 바깥은 여전히 밥벌이로 소란스럽다. 모든 균형이 깨어지고 가끔 파괴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을 조화롭게 한다. 특히 가을은 우리의 아주 가까이에서 허물을 벗기고 내면을 새롭게 한다. 가을의 끝에서 우리는 가끔 비를 만나기도 한다. 우리들의 가면을 벗기고 민낯을 향해 다가오는 반가운 손님이다. 오늘도 열심히 기꺼이 사라져 가는 계절의 흔적이 무채색의 잎 사이로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흔적들은 잎비가 되어 낙하한다.


잎을 떨군 가지 사이로 흐르는 햇살. 그 햇살이 오늘도 숲을 걸어가는 나의 그림자를 씩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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