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달에서
여름을 나누면
석 달의 몫이 생긴다
더위와 장마의 몫
한결같이 덥고 눅눅한 시간
바닥없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삶의 무거운 순간
그안에 여름의 모든 것이 있다
9월이 오면
여름의 몫들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여우꼬리만큼의 나머지가
가을의 한낮쯤에
비실비실 돌아다닌다
그래봤자 몫도 없는 나머지
잠깐 덥다가 마는 더위
살짝 내리다 마는 비
가을은
여름의 짜투리 앞에서도 힘이 있다
8월의 나머지를 넉넉히 품어
스스로 꼬투리를 여는 콩
누렇게 고개 숙이는 벼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뾰족한 껍질 속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밤
여름 없이 가을이 올까
씨앗을 품고 잎을 키우던
적멸의 시간들이
결실을 노래하는 계절
가을의 힘은 그곳으로부터 오는 것
여름의 날들을 견딘 삶이
또
지금
내 앞에서
가을!
가을!
소리치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