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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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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Oct 17. 2024

쪽지벌에는 잠자리가 살고 있었다


늪이라고 했다

토평천이 넘쳐야 비로소 살아났던 곳

징검다리를 건너

물버들나무를 지나자

장마에 잠긴 식물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가을 어느날 새벽이었다

푹신푹신한 진흙

뻘이 만든 오솔길을 따라

늪으로 들어섰다

잘못 디디면

다시는 살아나오지 못할 것 같은 늪

쪽지벌의 한복판에서

습지에 몸을 들인 잠자리떼를 보았다

엄청난 수의 곤충이

늪을 붉게 수놓으며

한때 수초였을 마른 기둥에 매달려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해가 뜨면

온몸에 내린 밤이슬을 털어내고

쪽지벌을 날아다니며

가을의 풍경으로 하늘을 수놓을테지

늪은 생명들의 보금자리

시월의 쪽지벌 깊숙한 곳

늪의 길이 끝난 그곳

운무 가득한 그자리에서

나는 사람 아닌 아무것이라도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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