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루왁"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아무라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쯤 흉내 내보지 않았을까.
어느 날 카모메 식당으로 한 남자가 왔다. 그녀가 식당을 열기 전, 바로 이곳에서 카페를 했던 그는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새 주인을 위해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마법의 주문 '코피 루왁'의 비법을 전수한다. 비밀을 공유한 나는 그녀처럼 드리퍼의 원두 가루에 살며시 손가락을 넣고 또박또박 주문을 외운다. 스르르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함께 주방에 퍼지는 커피 향은 행복을 낚는 그물이 된다. 아울러 시나몬 롤과 사과 한 알, 그리고 호두와 생강편을 곁들인 티타임은 빠져서는 안되는 12월의 호사다.
주먹밥을 팔지만 한 달째 손님이 없어 오늘도 졸고 있는 식당 주인 사치에. 그녀는 세계 지도를 펼쳐 놓은 채 눈 감고 손가락이 가리킨 나라로 무작정 온 미도리와 20년 동안 부모님의 병간호를 끝내고 쉬러 왔다가 공항에서 짐을 몽땅 잃어버린 마사코를 만난다. 이 후 세 명의 여인은 커피와 시나몬 롤, 그리고 연어 구이와 주먹밥을 팔며 새로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찾아 온 외톨이 청년 토미, 혼자 몰래 커피 머신을 가지러 온 전 주인 바리스타 마티, 이유 없이 떠난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다 술주정뱅이가 된 동네 여인 리사. 저마다의 사연으로 온통 슬프고 우울한 그들과 사치에는 함께 만든 주먹밥을 나누어 먹는다. 따뜻한 밥 한 끼의 힘, 카모메 식당에서 그들은 위로를 받고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한다. 커피와 시나몬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서로에게 스며들고 또 조금씩 닮아간다. 타인들의 시간이 우리들의 시간이 된다.
벌써 세 번째다. 잔잔한 그들의 삶이 자꾸 나를 부른다. 이 영화에는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사람이 없다. 영악하고 재빠른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 한 군데 모자란 듯 어설프고, 연약하고, 손해만 보고, 배려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다못해 이 식당을 기웃거리거나 찾아오는 동네 주민들도 순박하기만 하다. 낯설고 생소한 나라, 불쑥 마음이 동하여도 찾아가기엔 너무 멀리 있는 곳. 그러나, 핀란드의 시간은 조용하고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이 지친 이방인들을 헬싱키까지 날아 오게 한 중요한 이유다.
삶이 상품이 되는 사회는 얼마나 바쁘고 소란스러운가. 몸과 마음이 쉽게 지쳐 버리는 도시와 탐욕스러운 자본의 늪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카모메 식당이다. 사회부적응아, 삶에 지친 자, 마음이 슬픈 자들이 오면 행복을 느끼는 가게. 문득 괴로움을 말하고 싶어지는 식당, 누구든 들어주기만 해도 힘이 나는 식당.
북유럽의 자작나무 향이 가득한 식탁과 의자에 앉는다. 식당 벽면의 하늘색 패널이 이국적이라서 더욱 좋다. 스틸 조명등과 오픈 키친도 넓고 산뜻해서 좋다. 밤이 되어도 환한 백야의 시간은 또 얼마나 멋진가. 혼자가 아닌 둘, 그리고 여럿이 나누는 그들의 일상은 언제나 편안하고 따뜻하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사치에는 외로운 미도리의 손을 잡고, 마사코와 마티, 리사와 토미를 거쳐 지금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기까지 한다. 조용히 몸을 기울이고 눈을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다. '난 널 언제나 응원해'라거나 '난 언제나 네 편'이라는 든든한 신호가 되어 내 앞에 우뚝 선다.
무엇을 넣어왔는지도 모르는 여행 가방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마사코는 숲에 들어 비로소 삶의 이유와 희망의 새로 난 길을 찾는다. 숲에서 딴 버섯이 잃어버렸던 가방에 가득했던 것은 비로소 그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섰다는 응원의 상징이 되겠다.
나를 몰입하게 만든 무수한 언어의 닻 중에서 나는 오늘 숲을 선택하련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찾아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한 그루의 벽오동과 개암나무, 솔숲길과 떡갈나무, 단풍길이 예쁜 낙엽로를 지나 숨은지와 버드나비지, 메타세쿼이아의 붉은 잎들과 우듬지에 부는 바람을 만나러 가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행복을 굽는 빵집>에 들러 시나몬 롤도 사야겠지. 카모메 식당의 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