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

by 글똥

책:<노생거 사원>/저자:제인 오스틴/출판사:을유

영화:2007년/감독:존 존슨/출연:펠리시티 존스, 제이제이 페일드, 리암 커닝엄


제인 오스틴의 첫 장편소설이나 사후에 출간된 작품 <노생거 사원>에서 우리는 18세기 후반, 영국 상류층의 파티 문화를 접한다. 그들의 사교댄스를 보고 있으면 초등학생 시절, 운동장에 모여 전교생이 함께 추던 춤이 생각난다. 남녀가 손을 잡는 게 쑥스러워 나무 작대기를 잡고 어설프게 따라 했던 체육복 차림의 댄스가 전부였지만 우아한 보넷과 버킷햇, 풍성한 치맛단, 절제된 몸놀림에서 묻어나는 품위, 그리고 그들의 사륜마차와 고성의 풍경을 보노라면 당장 영국행 표를 끊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싶어진다.


배경이 되는 바쓰와 로열 크레센트, 광천수 사교장은 실제 영국의 지명이며 건물이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18세의 주인공 캐서린이 파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겪는 다양한 일상을 하이틴 소설처럼 풀어놓았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술술 읽히는 이유다. 아마도 십 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었지 않을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엠마>에 비해 스토리가 가벼운 건 사실이지만, 웹 서핑을 하며 온라인 영국 여행을 하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힐링 소설이다.


주인공 캐서린은 독서를 좋아하는 소녀다. 허영과 내숭 가득한 친구 이자벨라, 자기 과시와 허풍으로 배가 부른 존 소프, 진실한 사랑이었던 노생거 사원의 아들 헨리를 만나면서 10대의 그녀가 18세기를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렁뚱땅 거짓과 가식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소신 있는 ‘나’를 완성해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작가인 그녀, 제인 오스틴의 삶은 어떠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비커밍 제인>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두 영화를 동시에 보고 나면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과 그녀의 삶이 많이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녀는 청춘의 시절, 르포로이라는 남자와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이별한다. 그러나 소설 속 캐서린과 헨리는 주변의 오해와 반대를 무릅쓰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어낸다. 해피 엔딩의 결말에서 느끼는 다양한 긍정의 감정들은 작가의 삶을 더욱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유가 된다.


1775년, 200년을 훌쩍 뛰어넘고 제인 오스틴은 태어났다. 그녀가 쓴 총 6편의 장편 소설은 모두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됐다. 프랑스는 혁명기였고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보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 이야기가 공존하던 시대였다. 유럽 지도를 펼쳐 놓고 역사를 찾아 지명을 톺아보며 소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을은 깊어 풀벌레 소리가 마음을 두드리는 10월, 북유럽 전설의 괴물 ‘트롤’이 ‘Northhanger Abbey(북쪽에 매달린 사원)’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은 소설. 책을 읽는 18세 소녀의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이 책갈피 틈새마다 번역된 책. 천고마비의 계절, <노생거 사원>을 읽었다면 주저 말고 청신한 그녀의 나머지 수작들도 읽어 보길 권한다. 젊다면 촘촘한 글자의 민음사를, 노안이라면 큼직한 포인트의 을유출판사 책을 옆구리에 끼고 미처 둘러보지 못한 영국의 과거와 현재를 천천히 산책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