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구정이다. 서울에서 두 아이가 내려왔다. 남편은 오늘도 출근이다. 큰 아이가 운전대를 잡고 시댁과 친정을 오가게 됐다. 자동차 네비와 휴대폰 네비를 켜고 조수석에 앉는다. 쿨쿨 잠만 자던 남편의 옆자리와 아들의 옆자리는 다르다. 몸은 늙건만 모성은 갈수록 파릇해진다. 두 눈을 부릅뜨고 출발부터 도착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낯선 길 위에서 어제의 피로는 간 곳 없고 마치 한 마리의 싱싱한 활어처럼 내가 살아 있다. 남편 옆자리에서 그토록 익혀보려 한 길이 오늘에서야 익숙해진다. 진작 이 길을 아들과 갔어야 했구나 싶다. 필요는 언제나 절박함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배운다. 나 홀로 고속도로 운전을 위해서 내게 가장 필요했었던 건 남편의 부재였다.
#아들의 여자 친구
기차 시간이 임박해졌다. 짐정리를 마치고 잠시 식탁에 앉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낸다. 기분이 묘하다. 당장 며느릿감이라도 되는 듯 사진을 자꾸 들여다본다. 안경을 벗고 자세히 본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 책을 좋아한다는 아들의 여자 친구. 설렘으로 책장을 살피다 나희덕의 시집을 한 권 꺼냈다.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주는 남자 친구 엄마의 선물. 이젠 이전과는 다른 거리에서, 다른 마음으로 아들과 엄마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내게도 독립운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병원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잠옷 바람에 롱패딩을 입고 마트에 갔다. 김밥 재료를 사서 나오는데 빵 굽는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다. 발길을 돌려 소금빵과 커피번을 샀다. 향긋한 빵 냄새만으로도 행복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발걸음이 가볍다. 흥얼흥얼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직 잠 속에 들었다. 연휴의 끝자락이 포근하다. 둘만 있던 공간이 두 아이로 인해 모처럼 꽉 찬 명절이었다. 하나라도 더 먹여 보내고 싶은 마음에 김밥을 썰고 아이들을 깨웠다. 밤새 끙끙거리다 기진맥진한 아이를 그제야 발견했다. 약국에 들러 급히 약을 사서 먹여도 차도가 없다. 탈진에 이른 아이를 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갔다. 웬만해선 혼자 견디는 아이가 제 발로 응급실을 말하다니, 이 녀석이 많이 아팠구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내일 서울로 가야 하는데, 그리고 모레부터 일도 해야 하는데 어미 마음이 복잡하다. 응급실은 생각보다 한산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채혈을 하고 수액을 맞았다. 잠시 후 당직 의사가 왔다. 중년의 인상이 매우 신뢰적이다. 혈액 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높으니 물만 마시라고 한다. 간호사가 수액 하나를 더 들고 오더니 말보다 더 빠르게 주삿바늘에 수액을 연결한다. 지나가던 의사가 "거기 아니야"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간호사. 신뢰적 의사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당황한 선임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정리하더니 잘 맞고 있던 수액도 거두려고 한다. 아직 반도 안 맞은 수액을 제거하면 종일 굶은 아들은 어쩌란 말인지. 잠깐의 실랑이를 들은 의사가 내 맘을 대변한다. 간호사의 대장은 역시 의사다. 어제부터 굶은 아이에게 하루 더 굶으라는 선고를 내리고 의사는 총총 사라졌다. 수액을 맞는 동안 아들 옆에 앉은 나는 비로소 보호자가 되어 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픈 자식에게는 꼭 부모가 필요한 법이지. 엄마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를 사색하다
나는 언제나 나이고 싶었다. 나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내였다가 엄마였다. 지금도 아내이며 여전히 엄마다. 앞으로의 나 역시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잘 견디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오늘에서야 그것이 간절해졌다. 의식보다 더 선명한 본능의 힘. 내게 주어진 수많은 이름 중에 마지막까지 남을 이름이 무엇인지 알았다. 결혼 후 오랜 세월,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다 큰 아들을 응급실에 데려 온 오늘 문득 풀리면서 나는 나의 엄마가,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마구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