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를 너무 열심히 했다. 밤낮으로 불편한 목과 어깨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두 달 전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언니들과 조카가 다니는 곳이라 신뢰가 깊다. 언니의 심각한 허리 통증과 조카의 고장 난 목을 단번에 회복시켜 준 곳이라 더욱 믿을 만하다. 운전 미숙의 나는 가끔 언니 차에 그리고 조카 차에 실려 고속도로를 달린다. 얹혀 가는 탓에 피곤하면 늘 꿀잠을 잔다. 그래서 전날 저녁은 새벽까지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 또 뜨개를 뜬다. 한심하다. 뜨개질을 하다 고장 난 곳을 치료하러 가는 날까지 뜨개를 하고 있으니.
중독이 별 건가. 지금 나는 뜨개 중독에 걸렸다. 하루라도 뜨개를 뜨지 않으면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거실을 서성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린다.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어떤 가방을 무슨 색 배합으로 뜨면 좋을지 구상한다. 큰 언니 것은 어떤 색으로 뜨면 좋을지, 작은 언니에겐 어떤 취향이 맞을지 고민이다. 당분간 뜨지 않을 거라고 장롱 속에 다 넣어둔 실을 다시 꺼내어 거실에 펼쳐 두고 색상을 맞춰 본다. 한나절이나 한밤을 그렇게 보내는 일이 요즘 더욱 잦다. 폭염으로 세상이 달구어지는 동안 나는 뜨개로 달구어진다. 거실의 에어컨은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나를 뜨개의 세계로 몰입하게 돕는다.
치료를 마치고 나면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는 곳이 있다. 반찬 가게다. 지인이 하던 반찬 가게가 문을 닫고 한동안 주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매일 국과 반찬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치료를 받으러 오는 주는 벌써부터 마음이 가볍다. 일주일 동안 주방으로부터의 해방일지를 쓸 수 있음이다. 게다가 이렇게 무더운 날의 식사 준비는 내 삶의 질을 음지로 떨어뜨리는 최악의 순간들이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다 보면 십만 원이 훌쩍 넘는다. 하나도 아깝지 않다. 차곡차곡 쟁여 놓은 반찬은 당당한 내 목소리가 되어 남편 앞에 선다. 모양과 크기가 일정한 반찬통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 넣어 두면 만점짜리 주부가 거저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요리를 하지 않는 시간, 나는 또 뜨개를 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앉는다. 탁자에 놓인 코바늘을 쥐는 것이 자연스럽다. 매일 듣는 성경을 켜 놓고 '그래, 어차피 성경 들으면 집중해야 하잖아. 성경 다 들을 때까지만 뜨면 돼.'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뜨개는 출근할 때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중독은 무섭다. 불편한 어깨와 목을 조심스레 움직여 샤워부스의 뜨거운 물로 찜질한다. 머리를 말리며 뜨거운 열이 몸에 닿는 순간도 내게는 치료의 과정이다. 내일부터는 일상을 바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나는 중독자 아닌가.
한 번씩 거울을 본다. 겉보기엔 참 멀쩡한 아줌마다. 어쩌다 뜨개 세상을 알아서 여기까지 왔을까. 아무리 수백만 원 하는 명품 로고를 저렴한 가격에 골고루 소유하는 기쁨이 크다 한들 천하보다 귀한 내 몸의 망가짐보다 앞설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내가 그 증거다. 마음을 비우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지 싶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는 지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중이다. 뜨개의 강은 넓고 깊어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먼 길을 돌아 치료를 하는 이유도 다시 뜨개를 뜨기 위해서다.
뜨개 중독녀의 아침이 또 밝았다. 건강을 팔아 장만한 버벌, 채널, 롱사, 루똥, 셀느, 펜스를 줄지어 놓고 오늘은 어떤 가방을 들고 갈까 고민하는 마음은 또 왜 이렇게 기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