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좋은 소행성 - 3화
사무실 형광등은 유난히 차갑게 빛났다.
그 빛보다 더 날카롭게 다가온 건, 내 사수의 눈빛이었다.
띠리리링—
전화벨이 울리자 사수는 빠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그걸 저한테 왜 물어보시죠?”
단호한 말끝이 사무실 공기를 뚫고 나왔다.
그 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타부서에서 정산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전화를 끊은 사수의 손끝엔 짜증과 피로가 엉켜 있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도 쉽지 않겠구나…’
입사 초반에는 내가 실수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그녀는 늘 전투모드였다.
지쳐 있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엔 스스로를 지키려 애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나에게만 유독 그러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화가 많은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개인적인 통화도 종종 길게 이어갔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어쩌면 그게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무실 한쪽에 쌓여 있던 파일들.
그것들도 그녀의 바쁜 하루가 만든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 하루가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루하루가 낯설고 복잡했다.
때로는 차가운 말투에 마음이 쿡쿡 찔렸고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꾹 삼켰다.
나는 점점 그녀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속으로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 회사, 1년만 다니고 말자.’
엄마는 늘 말했었다.
“이직하려면 적어도 3년은 채워야 해.”
하지만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먼저였다.
상사의 꾸지람을 듣는 사수의 모습은 매일 반복됐다.
“이게 뭐야! 다시 해와! 몇 년째인데 아직도 이 모양이야!”
그 말이 사무실을 울릴 때면, 공기는 얼어붙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어느 날, 퇴근 직전이었다.
총괄이사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이음 씨, 사수가 못한 업무는 오늘 이음 씨가 정리하고 퇴근해요.”
“네…? 지금 퇴근 시간인데요…”
목소리 끝에 조심스러운 억울함이 묻어났지만, 돌아오는 건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결국, 사무실에 혼자 남아 서류를 정리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고요하게 울리는 키보드 소리.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어쩐지 낯설고 조금은 서글펐다.
그날 이후 나는 기대를 내려놓았다.
도움을 바라기보다는 스스로 배워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여기가 전부는 아니야.
조금만 더 버티자.'
그 무렵부터였을까.
내 안에 그녀를 향한 묵은 원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건.
그녀의 힘듦은 알고 싶지 않았고 그저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나만 힘들다고 믿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녀도 다른 사람도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