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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25. 2017

나에게 있어 악몽이란

어릴 적 꿈을 꾸고 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끔 악몽처럼 힘든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 꿈은 귀신이 나오거나

호랑이가 나오거나 하는 그런 공포스러운 꿈이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서 악몽이란 멀쩡하게 살아있는 엄마가 꿈속에서는 돌아가셔서 내가 산소 앞에 앉아 

울다 깨는 아주 슬픈 꿈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자다 말고  엄마가 방에 있는지 얼른 확인하러 옆방으로 뛰어가서 잠들곤 했는데

그 느낌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나 오빠 때문에 힘든 상황이 되면  엄마의 한숨소리와 "내가 죽어야지" 하는

절망 섞인 탄성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도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엄마에게 절대 무슨 일 생기면 안 되는데 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내곤 하다가 학교를 지각하는 일도 있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고 사라질 것만 같아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 

이런 마음은 한 번도 엄마에게 표현한 적은 없어서 엄마는 아마 이런 나의 마음을  평생 모르고 계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엄마에게 상처받은 적도 여러 번 있다.

오빠의 사업으로 우리 집 형편은 그야말로 요동치는 파도와 같았다.


사업이 잘되는 경우는 아파트로도 이사를 가기도 하고 잘 안 되는 경우는 단칸방으로 이사를 가서 불편함을

온몸으로 견디기도 했다.

어느 때는 갑자기 양복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쳐 빨간딱지를 여기저기 붙이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회사 사람들 월급도 못주고 잠자리가 없다고 하여 우리 집으로 우르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몇 날 며칠을 숙박을 하기도 했다.


이런 때면 정말 오빠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고 이런 상황에 대해 가벼운 경고조차 하지 않는 엄마가

너무 밉고 증오스러웠다.


이때부터 나의 성격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불안정한  가정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나는 어디서나 가족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최대한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사람이 좀 격식과 틀에 매여 흐트러짐이 없게 보이려는 불편함이 내 몸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때 엄마는 분명 딸자식에 대한 생각은 미뤄놓고 오로지 장남인 오빠에 대한 성공과 지원만이 당신 자신의 목표이자 삶의 이유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수능에 합격 후 입학금으로 준비해두었던 돈을 오빠 사업자금으로 급하게 써야 한다며 학교 입학을 미루게 했던 사건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마음에 한이 되는 사건이었다.


엄마도 한 사람의 여자이면서 왜 그렇게 장남에 대한 유교적 사상에 젖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어떻게 저렇게 끊임없이 주고 또 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가 있을까?


철없던 어린 시절에 나는 절대 아들 낳지 않겠다고 말을 하고 다짐했던 것이 씨가 되었는지 나는 현재

예쁜 두 딸을 낳고 살고 있다.


나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늘 갈구하며 한편으로는 질투하며 역시 엄마는 왜곡된 사랑과 편협된 사랑을

하고 있어"라는 나만의 판단을 내리고 그렇게 치부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사랑은 분명 엄마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염두에 둔 것임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그 편협되고 질긴 사랑은 엄마가 이 세상과 이별하는 그날까지 한치의 변함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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