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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연 Mar 26. 2017

빛나던 사랑

아침 기도에 눈을 뜨고

쿵쿵!

냉장고 문 여는 소리와 이것저것 꺼내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뜬다.


큰딸과 작은딸이 외출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나 보다.

연한 아메리카노 향기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있는 아침이다.


얼른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준비를 해주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밤늦게 잠을 자고 아침잠이 많은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한때 아침형 인간이 붐을 이루었을 때 나는 아예 아침형 인간은 나에게 맞지 않는 유형이라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내가 이렇게 일어나기 힘들어했던 새벽 시간..

엄마는 지난시절  항상 일찍 일어나 그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하셨었지..


내가 수학여행을 가는 날,  시험을 보는 날, 취직 시험을 보러 가는 날  등 중요한 날엔 더 간절히 언제나

엄마는 새벽에 홀로 일어나서 물을 떠놓고 기도를 드렸다.

한 번은 무슨 기도를 저리도 하실까 궁금해서 몰래 들어 보았는데 구구절절  하나부터

열까지 자식들에 대한 염려와 소망을 담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겨울에는 따뜻한 부뚜막에 어김없이 운동화가  올려져 있어서 신발을 신고 나갈 때 그 따뜻함이란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볼 수 없는 행복 가득한 따뜻함이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긍정의 아이콘이기도 하여 어려운 삶의 순간순간들 속에서 금방 무너질 것처럼

힘들어하시다가도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일상의 생활 속에 흡수되어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셨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얼굴에 수심을 보이면 안 되고 언제나 몸가짐을 가꾸고 단정히 해야 한다며

옷매무새를 만져주시곤 했는데 최근 팔순이 다 되실 때까지도 동네에서 패셔니스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언제나 정갈하고 고운 분이셨다.


가정생활에 많은 보탬을 주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해서도  엄마는 원망이나 질책은 하셨지만 속으로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기와 위안을 주시는 경우가 많아 어린 시절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한 번은 아버지가 동네 친구분들과 내기 화투를 하신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는데 나는 그 장소에 가서

아버지에게 집에 빨리 가자고 조르고 졸랐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나를 귀엽다면서 용돈을 손에 쥐어주시며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걱정할 엄마를 생각하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조르다 지쳐서 집에 가려고 나오는 중 내 눈에 아버지 친구분들 신발이 눈에 뜨였고  

그 신발 한 짝씩 들고 나와 옆집 지붕 위에 모두 던져버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집에 돌아온 후 막상 부모님께 혼이 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늦는다며 직접 찾으러 가셨고 조금 후에 아버지는 신발 한 짝만 신으신 채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일부러 잠자는 척 이불속에서 꿈하지 않고 누워 있었는데 엄마는 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리면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아버지는 허허 웃음을 웃으시며 친구분들이 모두 신발 한 짝만 신은채 집으로 모두 갔다며 계속 허허 웃으셨다.


"내일 아침 얘가 일어나면 야단치지 말아요 얼마나 싫으면 그랬겠어요" 라며 엄마는 김치를 아버지 숟가락에

얹어 주셨다.


나는 그날 밤 꿈속에서 다시 한번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들의 신발을 하늘 높이 던졌는데 그 신발들은 하늘에

높이높이 떠오르더니 하나둘 별이 되어 하늘 가운데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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