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나의 언니 나의 사랑
1남 3녀중 60년대생 장녀!
이 한줄의 텍스트 안에는 많은것들이 담겨져 있다.
이 한줄의 텍스트는 헤아릴수 없는 아쉬움과 슬픔과 그리움이 한 바가지가 되어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먹먹하다 못해 아리다.
그래 그랬었지.. 우리언니는 우리집의 장녀였었지..
장녀라는, 큰딸이라는 무게와 책임을 어떻게 혼자 짊어졌을까?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안따깝고 미안하고 끝내 화가 나기도 한다.
언니는 다른 또래들과 달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그런것이 하나도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늘 숨쉬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듯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나와 동생은 학교에 가고 필요한 학용품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요구하는것들이
너무 당연했고 엄마는 부족한 재정적 지원을 언니에게 요구하는것들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도 어렸을텐데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무겁고 부담스러웠을지
생각만 해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려서 견딜수가 없다.
한번쯤 부모에게 따질법도 한데 내 기억에 따지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한번쯤 떼를 쓰거나 불평 불만을 함직도 한데 그런적이 한번도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은 기억 안나지?
"뭐가 언니?
"우리가족이 서울로 올라 온지 얼마 안되었을때
"엄마가 처음 시작 한일이 양말 부업일이었어"
"그때 엄마가 완성된 물건을 하나하나 세어서 박스에 넣는데
자꾸 틀려서 몇번을 다시 세는거야.
그래서 내가 밤새서 잠을 안자고
엄마랑 같이 그 양말을 다 세었어.. 너희는 모르지?
"그때 언니가 초등학생이었는데? 밤에 잠을 안자고 그렇게 했다고?
"그래.. 너무 걱정이 되서 엄마랑 같이 셀려고 잠을 못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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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우리 언니는 가정에 대한 걱정과 그 무게를
장녀라는 그 굴레를 DNA를 가지고 태어난것처럼 운명처럼 순응을 했구나..
조막만한 손으로 양말을 세었을 언니를 생각하니 내 눈이 빨갛게 충혈되면서
가슴이 아려온다.
그때 그 조막한한 손을 한번만이라도 잡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