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은 '좋은 정서'를 들이는 것.

결혼 후 내가 살아왔던 집들_ 좋은 집에서 살고 싶습니다.

by 송앤



이른 아침에 분주히 흩어졌다가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집으로 모여드는 저녁 7시.

y가 퇴근하자마자 우리는 함께 부동산으로 갔다.

새로 이사 갈 집의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


피링~

문을 열자 경쾌한 풍경소리와 함께 부동산 사장님의 살짝 웃는 얼굴이 보였다.

한쪽 테이블에 어색하게 앉아계시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집주인이었다.

“안녕하세요.”

묘한 긴장감을 깨기 위해 밝게 인사했다. 그러나 어색한 공기에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서로 소개를 간단히 하고, 대화가 오갔다. y는 우리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설명을 했다.


“대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 아직 대출 확정이 난 상황은 아니에요. 은행에서 대출 확정이 되어야 전세계약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희가 어려운 상황은 아닙니다.”

아리송한 말에 집주인은 이해를 다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살짝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다. 단순하게 ‘대출이 안된다’로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계약 날짜를 조금 늦출 것 그랬나 봐요.. ”


집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다른 사람이 집을 보러 왔다고, 자기는 생각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며 부동산 문을 열고 나갔다.


피리 링~


한순간 벌어진 상황에 나와 y는 말문이 막혔다. 부동산 사장님도 놀랐다. 이럴 수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우리는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우리의 조건에 딱 맞는 집을 찾은 거였다. 집주인이 저렇게 가버리면 집을 놓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랴부랴 집주인을 쫓아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만요 ~!"


나와 y는 다시 집주인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다시 했다. 그리고 최대한 애절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설명을 들은 아주머니는 신호가 바뀌자,


“너무 걱정마요, 생각을 해보고 다시 연락 줄게 ”라고 말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가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나와 y는 그대로 다른 집을 보러 갔다. 아무래도 집을 놓친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우리에게 맞는 집을 찾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조건의 기준이 점점 낮아진다. 그래도 아이들의 생활권과 자유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마음대로 뛸 수 있는 조건은 절대로 빼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게 가장 어려운 조건일 수 도 있었는데 말이다.






결혼을 하고 이사를 4번 했다.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집에 대한 필요와 조건들이 매번 달라지는 걸 느낀다. 그 조건들은 결국 가족이 맘 편히,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함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조건을 온전히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은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와 y는 생전 가본 적이 없는 전라남도 진도라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섬이었지만 다리로 이어져있어서 섬 같지 않은 지역이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진도라는 지역에 대해서도 무지한 낯선 땅에서 우리의 첫 번째 보금자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번째 집은 진도읍에 있는 상점 건물 2층에 있는 원룸이었다. 월세 40만원을 줬고, 6평이었다.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6평이라는 대목에서 놀랐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그만큼 집에 대한 생각도, 욕심도 없었다. 결혼을 하면 신혼집은 이 정도 되어야 한다는 어떤 기준이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잘 산다는 것은, 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의 주체인 나와 남편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두 사람의 뜻과 마음이 맞는다면, 외부환경이 대수랴. 알콩 달콩 가정을 꾸려나가고,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재미와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결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각자가 함께하는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보잘것없는 신혼집에서 살았지만, 우리는 나름 행복했다. 시골이라는 특수한 환경이었기에 도시에서 생각하는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 집을 찾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오랫동안 살 지역이 아니었기에 집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 갓 입사한 신입 월급으로 40만원씩 따박따박 월세를 내면서 산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거였다. 결국 나와 y는 전셋집을 알아봤다. 시골이라 그런지 전셋집이 많이 없다. 부동산도 없다. 진도군청 홈페이지를 열심히 검색해가며,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전셋집을 찾았다.




두 번째 집은 전셋집이었다. 2층으로 된 복도식 원룸이었다. 10평으로 평수를 넓혔다.

대신 읍에서 멀어진 ‘고군면’으로 이사를 갔다. 모든 편의생활시설이 몰려있는 진도읍에서 멀어진 면으로 가는 것은 정말 고민이 되는 사안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전셋집이어야 했기에.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싣고 차로 언덕을 넘어 새로운 신혼집을 맞이했다.


두 번째 집에서는 2년을 살았다. 역시나 좋은 환경의 집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집은 따뜻한 봄날 같은 아련한 추억이 가득 담겨있는 곳이다. 나의 첫 아이가 태어났고 그곳에서 아이와 둘만의 시간으로 채워나간 곳이기 때문이다.

건물 뒤편에는 논과 밭이 있었다. 계절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흙과 물로만 차있던 까만 논둑길이 더운 날이 되면 어느새 머리칼을 세운 초록색 모가 줄지어 심어져 있었고, 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며 푸릇푸릇한 벼로 키를 키웠다. 선선한 계절이 되면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있었다. 집안에만 있기가 답답했는지 투정을 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집 뒤편 논길을 따라 걷곤 했다.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와 걸었다. 집만 전세를 준 것이 아니고, 산책길까지 전세로 얻은 기분이었다. 밤이 되면 개구리가 울었다. 우리 아이도 울었다. 예민하고 까다로웠던, 밤만 되면 울었던 아이를 달래느라 나는 아이를 안고 까만 논길을 또 찾곤 했다.




진도에서 살던 두번째 집_10평 원룸



식구가 늘어나니 10평 남짓한 집이 더 좁아 보였다. 짐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아이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려니 답답하고 갑갑했다. 아이가 서서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울 즈음에 우리는 더 넓은 평수의 집을 알아봤다. 역시나 어렵다. 그래도 후보가 몇 있었는데, 읍으로 가면 넓은 평수의 전셋집은 하늘에서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결국 우리는 읍내를 포기했다. 읍내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저렴한 가격에 넓은 평수의 전셋집, 누군가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우리는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기 전에 집을 보러 갔을 때, 집을 보자마자 놀랐다. 너무 넓었기 때문이었다.

30평이 넘는 평수였고, 방도 많았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주유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집이었고, 그 주유소 사장님이 살고 있는 옆집이었다. 집을 나가면 바로 큰 도로가 있다. 읍내로 나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주택가가 아니었다. 집 뒤에는 산이 있었다.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아침이 되면 새가 삐로롱 삐로롱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정을 했다.

“진짜 집 넓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저렴하게 내놓으셨을까? 우리를 위한 집 같아.”

“그러게. 여기 집주인이 다른 사람들은 받지 않으셨대. 아이 키우는 가정집을 받고 싶으셨다고 하시더라.”


주변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집을 알아보러 몇 명이 왔지만, 집주인은 그 사람들을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

조용하고 단조로운 동네에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으셔서,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가정집을 받고 싶으셨다고. 감동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 왜 이렇게 저렴한 건지 이사를 하고 나서 알았다.

집이 조립식으로 지어진 컨테이너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알고 있었어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살던 집은 너무 좁았기에, 읍내와 가깝고 넓은 평수로 가려면 이 집뿐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쏟아지는 빗방울이 후두두둑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밤에는 특히 내리는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아침이면 창가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집 뒤편에는 산이 있어서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사방에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주변이 온통 나무와 풀과 꽃이었다. 계절에 따라 산의 색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아이가 칭얼거리면 유모차를 끌고 집 주변을 돌며 산책을 즐겼다. 나는 집 주변의 모든 풍경을 사랑했다. 다행히도 방음이 안되고 자연친화적인 이 컨테이너 집이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장마철에는 엄청 습하고 겨울에는 추웠지만, 그래도 두 아이도 태어나고, 그럭저럭 잘 지냈다.


자연친화적인 컨테니어 집에서 2년을 살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 진도 땅을 떠나고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신혼생활과 진도에서의 모든 만남, 친숙함을 떠나와 찾아온 향수와 외로움 속에서도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던 산과 바다, 특히 진도 바다 끝에서 지는 불그스름한 해질녘 노을을 나는 사랑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왔는데, 진도는 나에게 추억과 풍요로움을 가득히 안겨주고 언제든 다시 오라며 나를 떠나보내주었다.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불쑥 낯설고 새로운 형태로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름 나만의 것을 찾아가고 만들어 갈 수가 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삶은 불행이 되기도 하고 선물이 되기도 한다.




진도에서 살던 세번째 집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와 집 계약을 하겠다고 하셨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사를 가게 되었구나! 작은 도시로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벌써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한다.


첫 번째 집은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시골에서 살았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거주 환경이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 건물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층간소음문제, 이웃과의 관계, 자연보다는 건물과 자동차가 더 많은 주거환경들. 지금은 적응이 되었지만, 가끔씩 그때가 그립다. 좁고 환경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을 비우게 되고, 삶의 여유와 자연이 함께했던 그 집이.



좋은 집은 멋들어진 가구와 가전제품으로 채워져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정서가, 추억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들로 채워져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새로 이사를 오게 된 이 집이 그런 집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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