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의 메모리

잊어버리고, 기억한다는 것.

by 송앤



벽에 잠이 깨졌다.

아이들 방이었다. 내 옆에 곤히 누워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히 안방 침대에서, 남편 옆에 누워서 무겁고 졸린 눈을 비비다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어떤 기억도 없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하다.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도중에 아이들에게 불려 가 아이들 방에서 강제 취침을 하게 되는 날이 거의 매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중간 과정에 대한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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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늘 상 있는 일이다.

예전에도, 출산 전에도, 결혼 전에도 그랬었나...?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낳고 난 이후에 확실히 기억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흔히 말하는 건망증이 심해졌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해졌다.

건망증이 심해진 것인지, 아니면 기억해야 할 새로운 일들이 갑자기 많아져서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예전에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아무리 찾아도 찾질 못했고,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언제부터 없어진 것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핸드폰에는 신생아 시절부터 찍은 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백업을 해놓지 않아서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아이의 사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찾지 못한 그 사건이 나에게 큰 상실감이 되었다. 엄마가 되어서 챙기고 기억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진 것이라고,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긴 것이 어디냐는 다소 우스갯소리 같으나, 따뜻한 위로의 말로 나를 다독거려줬던 시어머니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내가 기억을 잘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억할 게 많아서 정신이 없는 걸 꺼야. 정말 그렇게 믿으면서 스스로를 토닥이곤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게 불안함과 실망감을 안겨주는 일이다. 그때마다 나의 기분은 저기압이 된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속상해한다. 자주 있는 일이니 이제 그만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남편이 옆에서 거든다. 하지만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자꾸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반복이 되면 더 짜증이 나고 걱정이 된다. 나의 뇌가 지시해서 했던 행동들을 나의 뇌가 기억을 못 한다? 진짜 바보가 된 기분이다.




대로 어떤 기억들은 선명하고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날의 풍경과 그때 나누었던 대화, 그때 느꼈던 나의 감정과 머릿속에서 떠올랐던 생각들.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서 종종 머릿속에서 떠오르곤 한다. 특히 감정에 민감하게 영향을 줬던 사건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감정은 처음에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왜 그런 감정이 들게 되었는지 나 자신을 반추하게 되고, 머리로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어떤 상자들이 열리면서 몇 개의 사건 파일을 하나씩 꺼내진다. 과거에 그 사건이 내게 영향을 준 것일까? 그때도 나는 같은 감정을 느꼈었지.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혹은 너무 좋아서 내 마음속에 잔잔히 남아있는 것들은 기억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다. 굳이 생각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순간순간 일상에서 튀어나오거나, 꿈에서 리얼하게 재구성이 되기도 한다. 무의식의 흐름일까?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나를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이면 내가 나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잊혀서 잃어버리거나,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것들은 결국 나의 관심도에 따른 것이거나, 나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잊어버리면 잊힌 대로, 기억에 남아 있으면 남아있는 그것을 토대로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이해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반복되는 잡다한 건망증 사건들 (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예전에 홈쇼핑으로 많이 사두었던 청소용품이 어디에 있는지, 음식을 할 때 내가 소금을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잊어버리고 찾는 그런 사건들)이 내 인생을 뒤바꿔놓을 정도로 큰 사건들이 아니라는 점, 하지만 그럴 때 들었던 내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다스리는 방법들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소소한 사건들, 혹은 큰 사건들은 분명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 그 과거의 경험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다. 전문가처럼 그것들을 하나하나 파고들어 분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나라는 사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들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엄청 사소하지만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기억들은 지우고 잊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잘 알아야, 내가 나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에 의해서 내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안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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