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등원을 마치자마자 책상에 앉았다. 신중하게 둘째 유치원 모집 신청을 마치고, 모집 탈락에 대한 걱정을 잠깐 하다가... 주말 동안 미뤘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어느새 점심시간... 아점으로 냉장고에 며칠 동안 방치돼있던 국을 데워서 밥을 말아먹었다. 남은 반찬들은 이럴 때 요긴하다. 참 식사 준비하기가 귀찮다. 집이 춥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추운 계절이 싫다. 옷을 더 껴입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새벽에 스케치를 해놓은 그림을 마저 그렸다. 춥고, 피곤하고, 점점 다운된다... 햇볕을 좀 받아야겠다 싶어서 무작정 책과, 지갑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날이 꽤 차다. 아.. 이래서 집도 추웠구나.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 으스스하게 떨려서 온몸을 움츠렸다. 느낌과 동시에 바로 드는 생각은 우리 아이들이 아침에 옷을 따뜻하게 입고 갔는지였다. 청바지 속에 내의를 안 입은 아들이 생각난다. 엄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가장 가까운 카페로 발을 돌렸다. 따뜻한 카페라테가 생각났다. 날이 좀 더 온화했다면, 돈 쓰지 않고 천변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멍 때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하지만 카페라테가 너무 당겼다. 어서 따뜻한 카페로!
햇볕이 바로 내리 쬐이는 자리에 고민도 없이 바로 앉았다. 카페 화장실 옆에 있는, 사각지대에 있는 자리. 창밖 높은 건물 바로 위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태양이 딱 내 자리만을 밝게 비춰주고 있다. 나를 위한 자리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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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미디엄 템포의 재즈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카페라테.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는다.
새삼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움과 감사함, 그리고 '특정한 삶'에 대한 테두리 안과 밖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본문이 들어가기도 전에 추천의 말에서부터 밑줄을 그으면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고 있다. 특히 이 문장이 내게 와 닿았다.
그러니 여성은 자유롭다. 오히려 너무 자유로웠나? 싶은 망설임과 자책을 동반한 외출을 마치고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오면, 나의 얼굴을 한 양치기가 먼저 들어앉아 있다.( p10)
내 상태를 설명해주는 말 같았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어느새 내 안에 양치기가 있다. 내 자유와 행동을 설득하고 인정받고 싶은.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이 있었으면 좋겠고, 나 혼자로도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스스로 떳떳하고 싶기도 하다. 가정과 남편에게 충실하지 않은 엄마이자 아내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고, 자기 삶이 없는 여자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다.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여러 자아와 늘 타협하고 대화를 나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본격적으로 읽어보면서 계속해서 나에게 묻고 답을 구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집을 나오니... 생산적인 내가 된다. 카페 와서 돈 쓴 거 후회하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