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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를 향한 발걸음: 주키퍼의 시선

생명과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희망을 만들어가는 주토피아

by 송바오

제가 사육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2000년대 초였습니다. 21세기가 막 시작되던 그 시점은, 동물원의 역할이 깊은 고민 속에 있던 과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동물원이 동물을 단순히 전시하며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던 공간이었다면, 그즈음부터는 동물을 연구하고 보호하며, 더 나아가 생명에 대한 사랑을 전달해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저의 주키퍼 인생은 바로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우리에게 동물원은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동물원’이라는 이름 대신 ‘주토피아’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동물을 키우는 ‘사육사’가 아닌, 야생동물의 삶과 행복을 지키는 ‘주키퍼’라 불리고 싶다는 소망은, 우리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에서 시작된 동물원이라는 기관이, 이제는 ‘보전’, ‘공존’, 그리고 ‘생물 다양성’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절감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태생을 극복하고, 동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겠다는 저희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사육사들은, 이처럼 동물원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바로잡고 올바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최전선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지난한 과정이 늘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동물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대중의 오래된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들을 ‘보전’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진심으로 동참시키는 일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저희가 진정으로 동물들의 온전한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 진심은 결국 통할 것이라고요.


최근 해외의 선진 기관들에서 동물의 ‘복지(Welfare)’를 넘어 ‘웰빙(Well-being)’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복지’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락함과 스트레스 없는 상태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웰빙’은 그보다 한 단계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동물이 고유의 행동 양식을 충분히 발현하고,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움을 느끼며, 삶에서 긍정적인 경험과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판다들이 대나무를 맘껏 먹고, 생태적 환경에서 신나게 놀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바로 진정한 ‘웰빙’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21세기 주토피아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자, 주키퍼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되고 있습니다.


주토피아의 경영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원활하게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보전, 연구, 교육, 그리고 동물의 웰빙을 향한 저희의 모든 노력들이 유기적으로 결실을 맺을 때, 주토피아를 찾아주시는 분들 또한 자연스럽게 야생동물 보전과 생물 다양성 활동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동물을 보는 장소를 넘어, 생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우리 모두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며 실천하는 배움의 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의 발걸음은 오늘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주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입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동물과 인간이 함께 걸어갈 더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송영관 에버랜드 주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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