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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두 배의 법칙'과 메타인지

직장에서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

by 송바오

제가 처음 동물원에 입사했을 때는 소위 가장 무섭다고 하는 1, 2년 차 선배들과 더불어 15년에서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요즘 속된 말로 '꼰'자가 앞에 붙을 만한) 대선배님들도 많았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경력의 선후배들과 어우러져 일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느새 20년이 넘는 시간을 동물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수많은 동료와 함께 일하면서, 저는 나름의 관계 철학 하나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이는 공통의 일로 엮인 선후배 간의 건강한 성장을 돕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죠.


흔히들 말하듯, 처음 신입으로 업무를 시작할 때는 모르는 것이 태반이기에 선배의 가르침과 이끌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후배는 배움의 자세로 선배를 따르고, 선배는 마땅히 후배를 잘 가르쳐주어야 하고요. 하지만 그 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바람직하지도 않고요. 언젠가는 후배도 스스로 역량을 키워 주체적으로 업무를 해 나가야 하고, 선배 또한 성장한 후배가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며 자신의 길을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경력을 존중하며 함께 나아가야 하는 시점은 도대체 언제인지 정량적으로 알 수는 없을까요?


있는 것일 수 있지만, 특히 이 시기를 넘어 깊어지는 갈등으로 관계가 어긋나면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게 되고, 억압과 갈등의 굴레에 갇혀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을 여럿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적절한 시점'과 더불어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만드는지 찾으려 애썼고, 그동안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름 붙이길 '연차 두 배의 법칙'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1년 차 신입 사원일 때 5년 차 선배의 업무 능력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시간이 흘러 3년 차가 되고 선배가 7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그 격차는 크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가 4년 차가 되고 그 선배가 8년 차가 되면, 이때부터 나와 선배의 연차 비율이 '두 배 이하'로 좁혀지게 되는데, 그 정도부터 비로소 업무적인 공감대가 깊어지고, 각자의 경력과 회사를 위한 '건전한 경쟁'의 바탕이 채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역량과 성향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각자의 시간을 채워왔고 서로 메타인지가 가능하다면 이 법칙은 놀랍도록 유효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여기서 메타인지는 단순히 자신을 아는 것을 넘어, 상대의 입장과 변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나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성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따르고 이끄는 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배우고 협력하며 함께 발전하는 동등한 주체로 설 수 있는 때가 찾아오는 것이죠. 각박한 현실에서 제가 너무 이상을 꿈꾸는 달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기만큼은 그때가 가장 '적절할 때'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법칙을 저의 (꼰)대선배님들과 저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처음 15배 넘게 차이가 나던 연차가 10배, 5배로 좁혀지다가 2020년대 초가 되어서야 겨우 '연차 두 배의 법칙'이 적용되는 구간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전에는 어설프게 함부로 맞먹으면 안 되는 거죠. 하하. 반대로 이후로는 존중과 인정의 자세가 더 필요하겠고요. 그렇다고 후배가 겸손을 잃으면 말짱 도루묵일 수 있으니, 사회 생활이란 참 어렵고 복잡한 게 사실입니다. 결국 저는 입사 후 17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 선배님들의 그늘에서 많은 것을 배우다가 이제 막 몇 년 전부터 그분들의 어깨에 맞대고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역량이 된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등을 보고 계속 쫓다 보니 어느새 내어준 어깨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견디며 찾아온 시간으로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정해진 각자의 시간을 충실히 채우는 것과 더불어 선배와 후배 모두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정성적인 자기 인식이 더 중요하고, 그것이 가능할 때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이루어질 테지요. 함께하는 시간을 내가 혹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니었는지, 서로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바라보고 보완하며 나아가는 그런 관계가 된다면 선배나 직장 상사의 잔소리도 쓰게 느껴지지 않을 테고, 후배나 부하 직원의 실수에도 분노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미 협업으로 상생하는 관계로 다져졌을 테니까요. 반대로 그게 되지 않으면 나이와 연차의 차이를 떠나서 모든 선배는 불편한 '꼰대'가 될 수 있고, 모든 후배는 속 썩이는 '골칫덩이'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별로 경력 차이가 나지 않던 바로 위의 1, 2년 차 선배가 가장 무서운 이유도, 무서울 게 없는 이유도 모두 이해가 되는군요.

자, 저는 이제 확신합니다. 선배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얻은 수많은 배움과, 나와 함께 성장한 후배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저는 제가 정한 그 법칙을 통해 건전한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해 왔음을요.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그렇게 믿음으로 계속 나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은 여러분도 제가 말하는 '연차 두 배의 법칙'이 적용되는 동료가 주변에 있는지 살펴 보시고, 메타인지에 시동을 걸어보는 건 어떠신가요?


송영관 에버랜드 주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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