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의사의 아름다운 선택
주토피아에서 오랜 시간 한결같이 함께해온 선배님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제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처럼 10년 이상 한 직장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에, 그 긴 세월을 바쳐 동물원과 함께한 그분들의 발자취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한 세기의 끝자락에서 다음 세기의 문을 열며 과거의 동물원에서 오늘의 주토피아를 일궈낸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얼마 전, 정년 퇴임을 앞둔 한 선배님과 내년에 40주년을 맞는 또 다른 선배님께서 저를 찾아주셨는데,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분들의 깊은 내공과 단단한 시간의 무게가 제 마음 깊숙이 와 닿았습니다.
제가 2000년대 초반 신입으로 동물원에 들어섰을 때, 이미 그분들은 십수 년의 경험을 품고 계셨습니다. 동물원 구석구석마다 선배님들의 손길과 마음이 닿아 있었고, 그 지혜와 역량들은 신참이던 저에게 큰 배움의 샘이 되어 주었습니다. 묵묵히 그분들의 뒤를 따르며 넘어지고 또 일어서며 성장할 수 있었죠.
특히 정년퇴임을 앞둔 선배님은 전공이 수의사임에도 동물을 더 가까이에서 보살피기 위해 사육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당시에 모두가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 동물을 향한 본인만의 진심 어린 마음 하나로 길을 선택한 그의 모습은 주토피아에 여전히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낍니다.
“은퇴.... 실감 나세요?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라고 조심스레 여쭤보았을 때, 선배님께서 말씀하시길 “일하면서 위급한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예상치 못한 동물의 행동이나 장비 문제로 당황할 때마다 늘 누군가가 곁에 와서 소중한 도움을 주었더라고. 그 덕분에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라고 하셨습니다. 동물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서로 손을 내밀고 돕는 동료들이 있어 가능했던 시간이었다는 선배님의 말씀은 저의 마음 깊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도움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만약 은퇴를 앞둔 선배님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저 역시 일이라는 바쁜 것에 치이다 그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료들의 따뜻함과 든든함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늘 저는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공간을 묵묵히 지켜오며 후배들의 작은 어려움까지 헤아리고,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아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진심이 주토피아의 미래를 더욱 따뜻하고 든든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 마음 깊이 믿습니다.
송영관 에버랜드 주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