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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Nov 26. 2016

'테일 오브 테일즈'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좋은 나라, 좋은 지도자가 되는 방법...

주말에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봅니다. 매주 똑같은 포맷으로 두 영화를 소개합니다. 철 지난 영화와 최근 영화를 묶어 소개합니다. 뻔한 포맷에 깊이 있는 리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모바일 인터넷의 등장과 SNS로 사람들은 이제 긴 리뷰를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두 편의 비슷한 소재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합니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에라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비슷한 영화 두 편을 깊이 있게 보는 시간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을 들었습니다. 마음속의 촛불을 들기도 하고 진짜 촛불, 그것도 아니면 LED 촛불에 휴대폰 불빛을 들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좋은 정책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이지만 그 당연한 것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 국민은 말합니다. '이게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소재도 전혀 다르지만 묘한 교차지점이 보이는 두 영화가 있습니다. '테일 오브 테일즈'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원제 Tale of Tales)는 바로크 시대의 민담을 모은 점바티스타 바실레의 작품이 원작으로 세 왕국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입니다.

첫 번째는 대를 잇기 위한 집착을 보이는 왕비가 등장합니다. 아이를 유산한 것으로 보이는 왕비는 한 사내로부터 바다 괴물을 죽이고 그 심장을 처녀가 요리해 왕비에게 먹이면 된다는 얘기였죠. 왕이 희생될 정도였지만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처녀 역시 난데없는 임신을 하고 역시 아들을 출산하죠. 몇 년 후 이 아들들은 왕자와 천민으로 만나지만 두 소년은 자라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그 꼴을 보지 못했고 둘을 갈라놓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바람둥이 군주가 등장합니다. 마치 쓰레기 더미처럼 벌거벗은 여성이 한가득한 모습이 보이는데 그런데도 여성에 집착하죠.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게 되지만 사실은 목소리만 아름다운 노파였죠. 만나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이지만 어두운 곳에서 만나는 것을 조건으로 만나지만 호기심이 생긴 군주는 불빛으로 노파를 발견하고 그를 창밖으로 내던지게 됩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고 착한(!) 마녀의 도움으로 젊어지게 되죠.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여동생이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세 번째는 애완 벼룩에 집착한 왕의 이야기….
사랑스러운 공주가 있음에도 벼룩 기르기에 열중하고 벼룩은 거대하게 자라나죠. 애정과 관심에도 벼룩이 죽고 때마침 공주의 혼사를 위해 죽어버린 벼룩의 가죽임을 숨기고 이 가죽의 정체를 말하는 이에게 딸과 결혼시키겠다고 말합니다. 근데 우람하고 괴팍해 보이는 산적 하나가 덜컥 정답을 맞히죠. 얼떨결에 그것도 벼룩 때문에 산적에게 시집을 가게 되다니….

 




근데 이 세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들은 욕심이 아주 많다는 것이죠. 여왕은 대를 잇기 위한 욕망이 컸고 군주와 노파 자매는 여성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아름답고 싶은 욕망에 각자 빠지게 됩니다. 벼룩 집착 왕은 사랑스러운 딸을 잃게 되면서 집착에 대한 욕심과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우둔함이 문제였던 것이죠.

두 번째는 이들 왕국에는 국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닌데 앞에 말씀드린 욕심과 욕망에 집중한 나머지 왕국을 소홀히 다루고 결과는 모두 처참한 모습을 보인 것이죠. 국민이 있어야 나라(왕국)가 있어야 하는데 광대나 부르고 있고, 거대한 연회에 호색한 모습까지 나오죠.






동화로 인간의 욕심과 진정한 리더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런 작품이 있다면 소외된 이들의 혁명과 노력 등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켄 로치의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원제  I, Daniel Blake)는 암울한 영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심장 질환 이상으로 일해서는 안된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던 목수 출신인 그에게 실업급여는커녕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받을 수 있다는 얘길 해당 공무원에게 듣게 됩니다. 1시간이 넘는 ARS 대기음을 들어가며 고작 그가 들은 말은 건강한 것으로 생각되니 억울하면 법으로 호소하라는 소리뿐이지요.


한편 자녀 둘을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의 사연을 접하고 다니엘은 그녀와 가족들을 돕기로 맘먹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케이티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마트 스타일) 보급소에서 허겁지겁 캔의 수프를 마셔대고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물건을 훔치고 대형할인점 보안요원의 은밀한 제안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근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가 나름 잘 이루어질 것 같은 영국조차도 빈민층이 발생하고 민원 서비스는 엉망에 살벌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이거 우리나라 얘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너무 사무적인 공무원들과 속 터지게 만드는 ARS 시스템까지도 한국을 닮아있고요. 심지어 영국 총리도 디스를 당합니다. 이와 더불어 브렉시트(EU 유럽연합 탈퇴) 소식은 이런 영국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런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는 싸워야 함을 보여주죠.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으로 시작하는 담벼락 낙서는 결국 세상에 대한 경고이자 자신의 의지를 정확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고생하는 빈민층 여학생들의 모습 가운데 미용에 더 신경을 쓰시고 뜬금없이 지출 내역에 발기부전제가 들어가 있는 상황... 그 속에 어린아이들은 차가운 물속에서 수많은 시간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상황을 접했으며 사과와 번복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하는 모습에는 정말 누굴 위한 나라인가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욕심쟁이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그런 지도자는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촛불을 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들만의 시국선을 해야 할까요?

이 모든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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