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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Jun 19. 2017

'퍼스널 쇼퍼' & '엘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여성은 왜 범죄의 대상이 되어버렸나?

※영화 '퍼스널 쇼퍼'와 '엘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년 5월 강남역 앞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불특정 여성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고는 여성과 남성 모두 묻지마 범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성은 스토킹의 대상이 되었고 묻지마 범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격에 속수무책에 당하는 여성들...

그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호되고 있는 것일까요?

지난번 '용순' & '걷기왕'에 이은 여성에 대한 영화이자 이번에는 인권에 대한 영화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퍼스널 쇼퍼'와 '엘르'입니다.






영화 '퍼스널 쇼퍼(원제 Personal Shopper, 2016)의 모린은 프랑스에 사는 여성입니다.

고객들의 취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상품을 추천하고 가져오는 '퍼스널 쇼퍼'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던 그는 최근 세상을 떠난 쌍둥이 오빠 루이스가 살던 집에 살게 됩니다. 같은 친구이자 오빠의 애인이었던 라라는 그에게 저택 키를 쥐어줍니다. 라라와 모린 모두 귀신을 보는 영매사이기도 하지만 모린은 그것을 숨기고 퍼스널 쇼퍼로 살아갑니다.


밤에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모린을 위협하지만 진짜 공포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루이스의 영혼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나마 마음이 놓일 텐데 모린은 정체 모를 휴대폰 문자를 계속 받게 되고 그것이 오빠에게서 온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전담 고객이었던 인기 모델이 살해를 당하면서 모린의 공포는 더해가기만 합니다.





영화 '엘르'(원제 Elle, 2016)의 배경 역시 공교롭게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의 게임 제작회사의 대표인 미셸은 새로운 게임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자극적이어야 게이머들의 눈길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직원들을 닦달하며 게임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검은 복면을 한 사내가 침입해 미셸을 공격하게 됩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미셸은 아무렇지 않듯 깨진 접시와 폭행으로 어질러진 집안을 치웁니다. 하지만 그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게임 캐릭터 얼굴에 자신이 합성된 상태에서 강간하는 상황이 찍힌 동영상이 떠돌고 정체불명의 협박 전화도 그를 위협합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학자였던 남편 로베르트과 이혼했고 아들 뱅상은 변변치 직업으로 방황하고, 뱅상의 여자 친구인 조쉬는 자신들의 교제 반대는 물론 지원도 하지 않은 시어머니나 다름없는 미셸에게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거기에 미셸의 어머니는 자주 남자를 바꾸고 있고 아버지는 오래전 묻지마 살인을 벌이던 살인범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상황에서 살인자 딸, 살인자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가운데 미셸은 이웃집 남자 파트릭에 호감을 갖게 됩니다.




'퍼스널 쇼퍼'와 '엘르'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는 공통점 외에도 커리우먼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들이 속수무책으로 정체불명의 이에게 공격을 당한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 두 작품의 여주인공 모두 혼자이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옷을 입어보고 일탈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흔히 말하는 섹스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냥 원초적인 욕구에 목마른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성적인 욕망도 주된 소재이기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자신들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이들을 대처하는 방법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퍼스널 쇼퍼'의 모린은 정체불명의 문자에 처음에는 겁을 먹더니 오히려 즐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처음부터 모린은 끝까지 경계를 하고 있긴 하지만요.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었던 모린의 욕망을 알게 되었고 그 약점을 계속 공략하며 그를 위협하면서 그의 욕망을 건드렸던 것이죠. 아마도 계속 동요했더라면 모린 역시 끔찍한 최후를 맞이 했을 것입니다.


'엘르'의 미셸은 처음에는 직접적인 방어를 주저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 살인마였던 아버지가 있었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어머니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강간당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던 것이죠. 친한 친구들에게만 이 사실을 공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지요. 영원히 미워하고 저주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을 괴롭히는 그 모든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역시도 적극적으로 변해야 함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마무리되지만 모린과 미셸 모두 떨떠름한, 완벽하지 않은 해결로 마무리 지었다는 것은 두 여성과 관객 모두 완벽한 해피엔딩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죠. 앞에 말씀드렸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한 여성의 죽음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고 여기에는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나는 남성이라서, 집에 있는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슬픔과 조롱이 뒤섞인 메모에서 이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알게 되는 대목입니다.

여자라서가 아닌 여자와 남자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서 모두 존중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나라를 떠나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씁쓸한 대목입니다.


'제2의 OOO 사건' 이름으로 우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전에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 그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모린과 미셸처럼 외국의 그저 지어낸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어쩌면 나의 여동생, 나의 누나(언니), 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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