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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Jul 26. 2017

'덩케르크' & '프란츠'

전쟁과 평화... 세계대전은 어떻게 청춘들을 혹사시켰는가?

※본 리뷰에는 영화 '덩케르크'와 '프란츠'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 7.  28. ~ 1918.  11.  11.

사망자 약 900만 명, 부상자 약 2,121만 명, 실종자 약 774만 명.

제2차 세계대전 1939. 9. 1. ~ 1945. 9.  2.

사망자 약 2,500만 명, 부상자와 실종자에 대한 기록이 확실치 않음.


많은 청춘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천문학적인 숫자라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사망자를 비롯해 부상, 실종자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두 번의 큰 전쟁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살아가는 의지를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묘하게 최근 두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이야기한 '프란츠'(원제 Frantz),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이야기한 '덩케르크'(원제 Dunkirk)가 바로 이들 작품입니다. 공통적으로 세계대전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것과 젊지만 거장의 길로 들어서는 두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프랑수아 오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영화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940년 5월 프랑스의 항구도시 덩케르크에서는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후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독일군의 숫자에 비해 이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해 이 곳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 후퇴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영국군 토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갑니다. 하지만 덩케르크 바다에는 수많은 병사가 탈출을 기다리는 상황이고 자칫 줄만 서다가 순서를 놓치고 영영 낙오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한편 도슨과 피터 부자(父子)는 영국군을 태울 자신들의 배에 구명조끼를 싣고 출항을 앞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피터의 친구 조지가 그들과 합류합니다.

그리고 하늘... 공군 조종사 파리어는 적군을 격퇴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의 비행기에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적기를 더 격투시키고 바다로 추락해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영국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있어서 덩케르크 이야기가  전설로 다가온 이야기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생각한 것을 보면 말이죠. '메멘토'로 자신을 알린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로 영상과 스토리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합니다. 리부트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잘 될까 말까 싶은데 놀란 감독이 그 어려운 것을 해냈죠. 그리고 '인터스텔라'와 '인셉션'으로 색다른 SF가 뭔가를 보여주죠.


그러던 그가 국뽕 영화라니? 철수를 하게 된 군인들이 자신들을 비겁한 배신자로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한 상태로 귀환합니다. 물론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뭔가 씁쓸함이 있는 부분으로 느껴지는 것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프랑스군은 탈출에 실패했고 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감동적인 영화로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이런 '영국산 국뽕 영화'를 이해하고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기리라 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이들의 희생이 뒷받침된 가운데 슬프지만 절반의 성공을 이루어낸 이들의 이야기에 많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죠.






시대는 더 과거로 돌아갑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독일...

한 여인이 묘지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그 묘지 앞을 서성거립니다.

안나는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사랑하던 약혼자인 프란츠를 잃은 상황에서 프란츠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죽었지만 여전히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이죠.

정체불명의 남자는 프란츠의 아버지이자 의사인 호프마이스터 박사를 찾아갑니다. 프랑스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 그는 이 사내와의 만남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이 사내가 프란츠와 친구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초대하기로 합니다.

프랑스인 아드리앵은 프란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타지에서 그것도 독일에서 독일인과 프랑스인이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독일인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아드리앵은 괴로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드리앵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안나는 그를 계속 만나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가고 마음을 다잡은 안나는 아드리앵을 만나러 프랑스로 향합니다. 거꾸로 프랑스에서 이방인이 된 독일인 안나에게 프랑스에서의 상황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아드리앵의 집에 도착한 안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만 아드리앵에는 약혼녀가 있었고 다시 안나는 혼자가 됩니다.


'프란츠'는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1932년 영화 '내가 죽인 남자'(원제 Broken Lullaby)를 프랑수와 오종 감독이 리메이크 한 작품입니다. 프랑스 청년 폴은 적군인 발터를 죽이게 되고 죄책감에 그가 사는 독일로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발터의 약혼녀였던 엘자는 그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리메이크와 마찬가지로 원작에서도 폴을 발터의 절친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이 서로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내용의 영화인데 리메이크가 되면서 분량이 길어졌는데 아마도 안나의 이야기(원작에서는 엘자)가 더 보강이 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프랑수와 오종은 리메이크를 통해 전쟁의 후유증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 누구인가를 되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도 살 수 없는 안나와 아드리앵의 모습은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자살'의 모습을 통해 보이고 있습니다. 마치 복선처럼 그려진 장면이었고 실제 비슷한 상황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마치 우리가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는 것에 대한 비유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음을 안나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는 젊지만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는 그 어느 거장들 만큼이나 품격 있는 작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두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장면들입니다.


'덩케르크'는 화면비가 두 가지 버전으로 등장하는데 불안을 암시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화면이 좁아지다가 전투씬이나 갑판 위에서의 장면에서는 큰 화면으로 등장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아이맥스를 사랑하는 인물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 장면이 왜 탄생했는가에서 예상해볼 수 있지요. 실제로 이 작품은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봐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죠.

'프란츠'는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대게의 영화들이 원래 컬러였던 화면이 암울한 과거를 보여 줄 때 흑백으로 탈색된 듯한 화면으로 변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거꾸로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행복한 순간을 보여줄 때 흑백이던 화면이 컬러로 변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이 정말 추억인지, 아니면 거짓으로 조작된 가짜 추억인지는 영화를 끝까지 봐야 이해가 되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전쟁은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승리자도, 패배자도 아닌 결말을 보여줍니다.

'덩케르크'에서 도망치듯 귀환한 영국군의 모습과 '프란츠'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모습들은 결국 이 전쟁이라는 것을 누가 만들고 왜 젊은 청춘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묻고 싶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편을 가르고 싸우고 있고 심지어는 왜 싸우는지 그들조차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치인 혹은 이 사회를 군림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라고요.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끔찍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포 영화를 한 편 보는 것만큼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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